정태수<편집국 부국장>
새빨간 거짓말보다 반쪽 진실이 훨씬 해롭다고 한다. 곧이곧대로 따진다면 그나마 반쪽 진실을 아예 새빨간 거짓말보다 해롭게 볼 까닭은 물론 없다. 그러나 이 말이 나름대로 생명력을 갖고 통용되는 까닭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는 사람보다 어렴풋한 반쪽 진실에 현혹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다름아니다. 모 신문 21일자에 실린 ‘언론과 기자의 책임’이란 칼럼 때문이다. 문제의 칼럼은 최근 발생한 한인여성 피살사건에 관련해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 발견된 엽기적 살인이라는 등 제목을 달아 바로 그 신문이 대서특필한 최초보도의 경위를 해명하다가, 후반부에 가서 돌연 화살촉을 본보로 돌려 짐짓 점잖은 어투로 훈계 내지 공격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곡절이야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칼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사실에 부합되지도 않고 논리적 완결성도 결여하고 있다. 그것이 내부회람용 보도경위서라면 모르되 적어도 불특정 다수에게 읽혀지는 것을 전제로 활자화되는 칼럼일 경우에는, 게다가 민감한 사안을 놓고 자신과 다르게 다룬 경쟁지의 보도에 대해 시비를 걸 경우에는 더욱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나름대로 유의미한 근거와 일관된 논리를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 칼럼의 필자는 ‘피해자 가족’의 입을 빌어 본보의 보도에 대한 시비를 시작해 같은 언론에서 활동하는 동료의식 등 본질을 흐리는 주장과 기자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는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등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논리를 덧붙이더니 느닷없이 한인사회에 군림하는 언론은 지역 독자들의 비판과 외면이 뒤따르기 마련이라느니 기자 자신에 주어진 특권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라는 등 사뭇 묵직하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거창한 주장의 출발점으로 삼은 ‘피해자 가족’의 말은 오직 뒤늦게 자신을 인터뷰한 모 신문의 기사는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것 한가지뿐이다.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조차 구분되지 않은 채 자신을 인터뷰해서…라고 한 것은 그저 실수라고 치자. 그러나 그 칼럼의 필자가 스스로 말했듯이 한인연관 살인사건이라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려는 기자의 열정이 식지 않았다면 본인의 의사와 전혀 다른 내용이란 주장이 제기됐을 때 이를 계기로 응당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시늉이라도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구체적인 예증도 없이, 유일하게 하나 끼워넣은 인용문조차 최소한의 격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걸 뒤에 이어지는 본보에 대한 장황한 훈계성 공격의 무기로 삼는 것 자체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본보의 보도가 잘못됐음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면 본보 또한 문제의 인터뷰가 나가게 된 경위 등을 낱낱이 밝혀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다.
피해자를 이용해 상대방 신문기사 헐뜯기에 전력을 다한 것은 동료 의식을 버린 채 자신의 얼굴에다 침을 뱉어버렸다는 주장도 어이없다. 우선 동료의식의 정의가 도대체 무엇인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많은 진실이 은폐되고 호도되고, 결국 언론의 신뢰 자체를 실추시킨 과거(부분적으로는 현재진행형)를 들춰내며 이제는 그러지 말자고 잘난 척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도 발휘할 때가 있고 발휘해서는 안될 사안이 따로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상기시켜주려는 것이다.
그 칼럼의 필자는 과연 이번 사건과 같이 독자들의 궁금증이 증폭되는 가운데 상대방 신문의 보도와 전혀 다른 주장을 접했을 때 동료 의식을 발휘해 기사를 포기한 적이 있는가. 만일 있다면 기자로서의 직무유기요 앞서 스스로 말한 궁긍증을 해소시켜주려는 기자의 열정에 어긋나는 것이고, 없다면 애당초 이런 주장을 할 자격조차 없다. 내친김에 한가지 더 묻고싶다. 얼마전 본보가 연쇄보도한 ‘가짜 한인회장 직함이용 노대통령 면담파문’과 관련해 그 칼럼 필자가 속한 신문은 본보 기사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빌어 잘못된 보도로 명예를 짓밟았다고 딴죽을 건 적이 있다. 그때 행여 내부에서 동료의식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는가. 이는 너희도 그랬으니까 우리도 한다는 저급한 변명이 아니라 진정 그런 지론의 소유자라면 필시 그 문제를 두고 뭔가 이의제기를 했어야 한다는 당연한 추측과 기대에서 하는 말이다.
또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원칙 운운하는 부분은 제법 근사하지만 불행하게도 필자의 논리적 모순만 드러내고 말았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져온 사람이라면 본인 스스로 털어놓고 있듯이 …사실확인에 들어갔지만 얻어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경찰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전해듣지 못한 아쉬움속에 기사를 작성하면서 그렇게 엽기적으로 꾸밀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납득시킬 수 없고, 실은 이번 사건을 다루면서 새로이 깨달은 것이라면 남탓에 앞서 내탓을 하는 데 먼저 써야 한다. 그리고 칼럼의 말미에 나열된 고상한 말들은 빈약한 근거에 기대어 거창한 공격을 하려다보니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다른매체나 언론비평가 혹은 제3의 일반독자라면 몰라도 적어도 그 칼럼 필자에게는, 이유야 어떻든 당초 이 사건을 엽기적 살인으로 몰고간 장본인이란 점 한가지만 봐도, 이를 바로잡는 주장을 실은 본보의 기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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