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 ‘섹스 앤 더 시티’는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던 TV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노처녀’라는 거북한 이름으로 불리며 눈칫밥을 먹어야 할 나이의 여자들이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대리만족감도 속 시원했지만, 무엇보다도 감칠맛 나는 대사가 일품이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다 같이 친구로 지내던 여성들이 왜 결혼을 하고 나면 싱글 여성들을 적대시하는가’에 대한 주제의 에피소드였다. 결론은, 기혼 여성들이 나이가 찾는데도 아직까지 결혼을 안 하고 험한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싱글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해한다는 것이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봐도, 기혼 여성들은 자신이 선택한 ‘결혼’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또래의 미혼 여성들을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쟤는 왜 아직 결혼을 안하는 거야’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사는 삶과 생활에 대해 애정을 갖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해한다는 부분을 극에서는 ‘figured out’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figured out 된다는 것은 결국 뻔하다는 얘기다. 남들만큼 공부하고, 남들 다 일할 때 직장 잡아서, 남들 결혼할 나이에 결혼하고, 결혼했으니까 아이를 갖고, 아이를 키우면서 차도 새로 바꾸고, 집도 사고, 저축을 늘려가고… 그렇게 일반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편하게 생각하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거나,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다거나, 남들 평생 한번하고 마는 결혼을 두세 번했다거나, 뚜렷한 직장이 없다거나, 학교 다닐 나이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거나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쉽게 figure out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삶을 조금만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다들 뻔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모른다. 좀 더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하고, 좀 더 뛰어난 직장을 잡기 원하고, 남들이 많이 가보지 못한 이국적인 곳에 가보길 원하고, 남들이 다 타는 대중적인 차는 타기 싫어하고, 남들보다 더 좋은 동네에 더 예쁜 집을 사려고 노력하고… 자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는 부모들도, 자식들이 뻔한 삶을 살지 않았으면, 그래서 남들에게 쉽사리 figured out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것은 좋을 수 있지만, figured out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뻔하다는 것은 재미없고 매력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열이 나고, 목이 타고, 식욕도 줄고, 잠도 줄고, 곧 만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그랬다가도 일단 상대가 뻔하다고 느껴지면 그걸로 끝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이 멀어지고 만다. 뿐만이 아니다.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도, ‘저기서 또 커지겠군’ ‘여기선 또 이런 소리를 내겠군’ 하고 쉽게 예측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뻔하다는 생각이 한 번 들면 여간해서는 다시 집중해서 들을 수가 없다. 뻔한 연설을 들으러 강연장을 찾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뻔한 영화를 보려고 극장을 찾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생을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평생 매력적인 사람으로 남고 싶으면, 쉽게 figured out 되지 말아야 한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면서 figured out이라는 표현이 유독 가슴에 와 닿은 이유는, 예술의 많은 부분이 쉽게 figured out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figure out 할 수 없어서 불편하지만, 그럴수록 매력과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게 또한 사람의 본능이기도 하다. 오디오 기기들과 녹음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했어도 라이브 연주가 주는 매력을 이길 수 없는 건,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절대로 figure out 할 수 없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쉽게 figured out 되지 않는 것은 하지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세월과 경험과 연륜이 묻어 나오는 연주를 들을 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듯이, 많이 사랑 받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배우고, 익히고, 자기 발전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을 때 쉽게 figured out 되지 않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매력이 솔솔 넘쳐나는, 그래서 한번도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사람들로만 꽉 찬 세상이면 참 좋겠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로만 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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