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뒤에 봅시다” 미 대륙 횡단 길에 오른 백승환 목사 가족(두 마리의 개를 포함)이 떠나기 전 트레일러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가족 의미’찾아 3만리
미국 첫발 20년만의 결단 일정짜기-RV 숙소예약등 사전계획 6개월
미국에 살면서 한번쯤 대륙횡단의 꿈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여름방학이 되면 RV 한 대 빌려 자녀들을 데리고 한달쯤 훌쩍 떠나보고 싶은 사람이 한둘일까. 그러나 다들 마음이고 생각일 뿐, 한달씩이나 휴가를 낼 형편도 그렇고, 여행경비와 철저한 사전준비까지 생각한다면 이를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올여름 진짜 미대륙횡단에 나선 가족이 있다. 백승환 목사(주님의영광교회 부목사)와 아내 올가(32)씨와 첫째딸 예은(9), 둘째아들 예찬(8), 막내딸 예진이(2)가 지난 14일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달 여정으로 미대륙 횡단 길에 올랐다.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이라고 짤막하게 동기를 밝히고 LA를 떠난 백목사 가족은 24개 주를 거쳐 8월11일 다시 LA로 돌아올 계획이다. 30일 동안 트레일러를 연결한 차로 운전할 왕복거리만 총 6,700마일로 여행에 소요될 예상 경비는 4,000달러(트레일러와 SUV구입에 소용된 비용은 제외). 캠프지정지(KOA·Kampgrounds of America)회원카드와 자동차클럽(AAA)회원카드를 챙겨 대륙횡단 대장정을 떠난 백목사의 여행기를 다음주부터 여성가정면에 5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그가 대륙횡단여행을 떠나게된 동기와 준비과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백목사 가족의 대륙횡단 일정과 지도.
백승환(42) 목사에게는 올해가 미국 땅에 발 디딘 지 20년째 되는 해. 미국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던 백목사의 꿈은 미대륙 횡단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기질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미국을 제대로 알려면 눈으로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백목사는 1980년대 후반 기자시절 ‘50개주를 가다’라는 기획취재 차 플로리다주와 캐롤라이나주를 다녀오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 대륙횡단을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굳혔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은퇴 후 계획을 대륙횡단이라고 한다지만, 실제로 대륙횡단처럼 장시간 운전해야하는 여행은 젊었을 때가 제격. 물론 한창 일할 나이에 대륙횡단을 하려면 적어도 3가지가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 돈 그리고 동행할 사람.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계획 자체가 불가능한 게 대륙횡단이다.
20년간 꿈만 꾸었던 백목사의 대륙횡단이 실행에 옮겨진 건 순전히 교회 덕분이다. 행정 및 선교를 담당하며 열심히 사역했던 백목사는 딱 일년만 충전기를 갖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올해 초부터 산 좋고 공기 맑은 테하차피의 해피수양관에서 개인시간을 갖게 된 것. 지난 6개월간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시간을 보내고 책을 쓰면서 대륙횡단 계획을 구체화시켰다.
대륙횡단을 결정한 후 백목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미국에 대한 공부. 미국 지도를 구입하고 로드트립(Roadtrip)이라는 두꺼운 책 한 권을 장만해 여행코스로 잡은 주요도시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뒤졌다.
“여행을 가면 자기가 아는 만큼만 눈에 보인다”고 강조하는 백목사는 실제로 캠핑을 좋아해 가족과 함께 자동차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막연히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에 후다닥 여행가방과 텐트를 챙겨 떠난 여행은 괜히 바쁘기만 했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없으면 1박2일을 가든지 3박4일을 가든지 분주하기만 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고 싶어서다. 이번만큼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미리 좀 알고 여행에 임하기로 자기자신과 굳게 약속했다.
가장 중요한 여행일정 짜기. 우선 커다란 미국전체지도를 펼쳐놓고 대륙을 4등분했다. 첫째 주 일정은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를 둘러보고, 둘째 주는 오클라호마,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를 간다. 지도상으로 보니 출발지에서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스 보로까지가 2,700마일이었다. 이 곳을 중간지점으로 삼아 방향을 동쪽으로 틀기로 했다. 그래서 셋째 주의 목적지는 버지니아, 메릴랜드, 뉴욕, 펜실베니아, 오하이오로 정했고 인디애나, 일리노이, 네브래스카, 와이오밍, 유타주가 넷째 주 마지막 코스가 됐다.
두 살배기 막내를 비롯해 다른 가족을 고려해 하루 이동거리를 500마일 이내로 제한시켰다. 운전하는데 힘을 빼면 자신도 아이들도 피곤하기만 해 여행의 알맹이는 놓칠게 뻔해서다. RV를 주차시킬 숙소 예약도 KOA를 통해 10군데 정도는 완료해 놓고 떠날 수 있었다.
한달간 24개주, 여행비 4천달러
트레일러에 있는 킹사이즈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즐겁기만 하다.
큰딸 예은이가 간단한 식기와 식량을 트레일러 내 부엌으로 옮기고 있다.
트레일러 구입
“교회 강단에서나 내 삶을 통해서나 ‘적극적인 생각’을 가장 중시합니다. 내 자신이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겠죠?”
숙박걱정 없이 여유 있는 여행을 하기 위해 RV를 한 대 구입하기로 마음먹은 백목사는 지난5월 베이커스필드에 있는 RV판매점을 찾아갔다.
모빌 홈은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픽업트럭에 다는 트레일러나 전향륜차(Fifthwheeler)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5인 가족이 탑승하려면 침대가 최소한 3개는 구비돼 있어야했고, 화장실과 샤워시설, 쿠킹시설 정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렇게 조목조목 따져 백목사가 구입한 RV는 26피트 길이에 킹사이즈 침대 하나와 침대겸용소파 1개, 식탁용 의자를 침대로 사용할 수 있고, 냉장고와 마이크로웨이브가 빌트 인 돼있는 트레일러로, SUV에 연결하도록 돼있었다.
“RV는 자동차와 달리 주택융자(House loan)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택소유자는 세컨드 홈이 되어 이자공제혜택도 있지만 저희야 트레일러가 퍼스트 홈이죠”
내 집 마련보다 RV를 먼저 구입한 셈. 이렇게 구입한 트레일러의 가격은 1만1,000달러. 10년 상한기간으로 매월 110달러씩 갚아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110달러면 웬만한 호텔의 1일 숙박료와 같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스스로가 RV를 타고 여행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고 생각됐다는 백목사는 “그런데 막상 구입하고 보니, 고수입자가 아니더라도 가능한 일이었다”고 스스로도 놀라는 눈치였다.
트레일러를 몰고 돌아온 백목사를 보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 여기가 자는 거야? 신난다. 어, 냉장고 있다. 와, TV도 있네. 그럼 차안에서 비디오도 볼 수 있어?” 끊임없이 종알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륙횡단 여행의 기대감이 더욱 커진 건 물론이었다. 간단한 식기와 옷가지들을 트레일러로 옮기고 3일분 정도의 밑반찬과 식량을 준비하는 데만 족히 이틀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안전점검. 자동차 체크업 리스트만도 대단했다. 출발 1주전에 자동차 엔진오일과 트랜스미션 오일 점검하고 트레일러에 있는 화장실과 가스안전장치 등을 꼼꼼하게 점검해 여행 동안에 발생할 문제를 예방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가족여행 그리고 추억거리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강 낚시를 간 적이 있어요. 2박3일로 기억되는데 아버지랑 텐트도 치고, 함께 간 일행들과 강에서 헤엄도 치며 정말 즐겁게 놀았죠. 평생을 기억에 남는 아버지와의 추억이었어요”
추억거리 자체가 교육거리라고 믿는다는 백목사는 장기여행으로 마냥 들떠있는 아이들에게 딱 한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저널(Journal)’을 쓰는 것. 아침저녁 예배 보는 거야 일상사이기에 그다지 강조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날그날 지나가고 머물렀던 도시명을 기억하고 그 곳에서 인상깊었던 일을 일기형식으로 남겨야 한다는 과제는 철저하게 강조했다.
“들뜬 마음만으로 떠나게 되면 여행을 다녀와서 남는 게 없어요. 떠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래서 스스로 준비하고 정리해야 하는 거죠”
백목사 또한 모든 준비를 철저히 했다. 여름철 별자리 공부까지 완벽하게 끝냈다는 백목사는 벌써부터 밤하늘에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헤아리며 아이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여행경비
“대륙횡단처럼 긴 여행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경비 마련도 해야지요. 우리 같은 서민 살림에서 4,000달러나 드는 여행경비 마련은 쉽지 않아요. 그나마 간호사로 일하는 제 아내가 1년간의 보너스를 고스란히 내놓았기에 걱정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었죠”
백목사는 자신과 아내, 딸 둘에 아들 하나, 그러니까 5인 기준으로 30일 여행경비를 4,000달러로 잡았다. 자동차 개스비만 1,500달러, RV팍 입장료가 1일25∼30달러이므로 숙박비 1,000달러를 빼고 나면 그야말로 빠듯한 경비다. 1인당 하루 세끼씩 끼니당 5∼7달러로 계산하면 5인 가족이 소비할 금액은 100달러. 그렇지만, 백목사의 경우는 하루 50달러가 식비와 문화비를 포함한 예산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신라면’이라 다행”이라는 백목사는 아이들이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햄버거, 피자 등 매일 패스트푸드만 먹을 순 없다고 생각해 매주 1회씩 코스코나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볼 작정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떠나기 직전, 한국 마켓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라면 한 박스와 백목사가 좋아하는 동치미 김치(러시아 출신인 아내 올가씨가 좋아하는 음식은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를 장만함으로써 여행준비를 완료했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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