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송영시간에 부르는 찬송가 2장 ‘성부 성자 성령께’는 아득한 초대교회 시절부터 불려온 찬송이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을 비롯해 무수한 성도들이 이 찬송을 부르며 화형 당하고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어릴 때 많이 부르는 찬송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234장)는 1893년 M.B. 윌리엄스 목사가 ‘성경’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던 중, 어머니가 임종할 때 물려준 성경을 만져보다가 단숨에 써 내려간 곡이다.
‘구주예수 의지함이’로 시작되는 340장은 남편이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러 뛰어들었다 함께 익사하는 장면을 지켜본 여성이 비통한 기도 속에 쓴 곡,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은 ‘19세기의 욥’이라 불리는 호레이쇼 스파포드가 시카고 대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유럽으로 가던 네 딸마저 여객선 침몰로 희생된 후 밤새 울부짖다가 시편 23편을 읽으면서 지은 것이다.
가장 은혜스런 찬송으로 불려지는 ‘나같은 죄인 살리신’(405장·Amazing Grace)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팔아넘기던 잔인한 노예상 존 뉴튼이 회심하여 지은 곡이며, 애절하고 아름다운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431장)는 심방을 마치고 돌아온 벤자민 슈몰크 목사 부부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한 집에서 죽어있는 어린 두 아들을 발견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지은 찬송이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511장)은 전염병으로 두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시인 프렌티스가 슬픔속에 성경을 읽다가 터져 나온 찬송,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512장)는 혀 암에 걸린 그리스도인에게 의사가 혀 절단수술을 집도하기 직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을 해보라고 하자 불렀다는 찬송이다.
관주 해설이 붙은 찬송가를 읽어보면 곡마다 눈물어린 탄생 배경이 기록되어 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구원받은 감격과 환희 속에서, 온갖 박해에 시달리면서, 죽음 가운데 부르다 생명을 얻은 이 찬송들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달라져도 성도들의 심금을 울리고, 아무리 불러도 싫증 나지 않는 영혼의 노래들이다.
찬송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소중한 책이고, 찬송은 곧 ‘곡조 붙은 기도’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 찬송이 복음성가와 CCM에 밀려 점차 교회와 예배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예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찬양을 모두 복음성가로 하는 교회도 본 적이 있다. 성도들은 찬송가를 가져오지 않은 채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가사를 보고 손뼉치며 찬양한다.
복음성가란 원래 전도용으로 만들어진 노래로, 부흥가 무디의 부흥운동이 한창이던 1873년 시작되었다. 복음성가를 Hymn(찬송)이라 하지 않고 Gospel Song(노래)라고 하는 이유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성격보다는, 사람을 전도하기 위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집회라면 모를까, 예배에서 찬송대신 복음성가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복음성가의 특징은 부르기 쉽고, 빨리 배우며, 수명이 짧고, 음의 변화가 많은 것인데, 사실 복음성가들 중에도 찬송가 못지 않게 은혜로운 곡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점차 그 성격이 변질되어 세속적으로 변하면서 오늘날에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 하여 젊은이들 취향의 곡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너도나도 마구잡이로 쉽게 만들어내는 이 노래들이 가사만 찬양 용어를 사용했지 리듬과 가락은 대중가요와 똑같은 곡들이 대부분이란 것이다.
특히 경계해야할 것은 10여년전만 해도 들어보지 못한 복음성가 가수, 찬양사역자, 성가사, CCM가수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 대중가수와 다를 바 없는 인기와 개런티를 누리며 신본주의보다 인본주의에 물든 찬양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팬클럽까지 결성돼있고 전속 밴드를 데리고 다니는 이들은 화려하고 세련된 연주와 매너로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데, 손을 흔들고 손뼉치며 눈물까지 흘리는 청중의 열광이 과연 성령 충만의 결과인지 스타의 멋진 공연에 취한 것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찬양집회라면서 가수를 모셔다 성도들을 대신해 노래하도록 돈을 지불하는 일도 그렇고, 성도들이 그 공연을 감상하며 “은혜 받았다”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일은 정말 이상하게 여겨진다.
찬송가도 좋고 복음성가도 좋은데, 그러나 이제쯤엔 한국 교계가 성경해석의 차이만 놓고 이단이다, 삼단이다 할 것이 아니라 성경보다 훨씬 쉽고 보편적으로 퍼져나가는 복음성가, CCM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검증에 나서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숙희<부국장 대우·특집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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