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운영하는 LA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트 모자 도소매 매장의 유리창이 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건은 국토안보부(DHS) 소속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장갑차까지 동원해 한인 운영 의류 업체 ‘앰비언스’를 급습한 다음날인 7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에 반발한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발생했다. 이 사장님는 크게 당황했다. 매장의 가장 큰 유리가 총알인지 돌멩이인지 알 수 없는 물체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고, 시위대는 점점 난폭해지고 있었다. 유리 수리업체에 연락해도 출장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뿐이었다. 결국 근처 홈디포에서 나무판자를 사서 뚫린 구멍을 대충 막고 가게 문을 닫았다. 그렇게 진땀을 빼고 나서야 겨우 다운타운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업소 유리가 박살 난 지 이틀 뒤인 월요일, 한인 의류도매 업체들이 모여 있는 흔히 ‘자바’라 불리는 곳으로 현장 취재를 나갔다. 이동하며 대략 어떤 상황일지 예상은 했지만, 실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훨씬 더 냉랭했다. 예전만큼의 호시절은 지났지만, 최근에도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한인 업주들 직원들뿐 아니라, 수많은 라틴계 직원들과 바이어들, 원단을 거래하는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져 역동적으로 돌아가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이방인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기자를 직원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매장 앞에 삼삼오오 모여 한숨을 내쉬던 업주들도 힐끗거렸다. 간판은 걸려 있지만 문을 닫은 가게들도 많았는데, 매장 앞에 있던 한인 업주에게 물어보니 당일 아침 ICE 요원들이 감찰을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그날 장사를 포기하고 셔터를 내린 집들이라고 했다.
고통 받는 건 자바 업주들만이 아니었다. 사우스 LA에서 여성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전화해 보니 “죽을 맛”이라 했다. 손님 대부분이 라틴계인 그 매장은 손님들이 아예 자취를 감춘 것 같단다. 라틴계를 표적으로 삼는 분위기에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가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 갑자기 출근하지 못하겠다는 직원은 알고 보니 소셜번호는 있지만 체류 신분이 없는 상태였다.
이렇듯 현장은 공포와 침묵으로 얼어붙고 있었지만, 정작 한인사회의 반응은 단단하지 않았다. 한인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누군가 단속의 부당함이나 공동체의 위기를 언급하면 “너 불체냐”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불법체류자 단속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에도 “불체는 불법이니 당해도 싸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이민자들에게 씌워진 틀 속에서 실제로 피해를 입는 주변의 고통은 외면한 채, 불법과 합법만을 나누는 이분법적 시선에 기자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단순히 ‘단속이 무섭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그 단속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소외되는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공동체의 진짜 방향을 결정짓는다. 시민권 혹은 ‘합법적 신분’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는 이유로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공동체는 안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된다. 이민사회라는 이름 아래 엮인 우리 모두는, 조건만 달라질 뿐 언제든 그 경계의 바깥으로 내몰릴 수 있다. 지금의 안전이 언젠가 뒤바뀌어 우리를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정권의 정책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누군가를 지지한다고 해서 모든 정책에 찬성해야 할 이유는 없고, 반대 진영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야 할 근거도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이민자’라는 자각 위에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기준 삼아 이 사회에 뿌리내릴 것인지 깊이 성찰하는 일이다. 편협한 판단과 혐오가 아니라, 공감과 책임감이야말로 이민자 공동체를 지켜낼 진짜 힘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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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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