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다음 인물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승려 담징(曇徵)은 일본 법륭사 금당의 벽화를 그렸다고 했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육군 사령관으로 수(隋)군을 무찔렀다고 했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은 나라의 땅을 넓혀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했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이란 장군도 알고, 동명성왕(東明聖王)의 개국 설화도 우리의 익숙한 이야기들이었다. 또한 현존하는 여러 고분벽화는 당시의 풍속과 고도로 발달한 건축 기술을 보여 우리의 긍지를 높히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열거한 것들은 외국 역사였던가.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한민족 고대사에 속하는 고구려의 역사로 알려져 왔었는가. 어느 날 일본이 ‘기무찌’라는 상표로 김치를 수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 경우와는 무게가 다르다.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 내 동북지역에 존재하던 변방국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들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유네스코 제 28차 세계유산위원회(WHC)가 고구려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북한과 중국은 위대한 고구려의 수준 높은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힘 다루기이고 땅 빼앗기였다.
현재 어느 국경 내에 있던지 관계없이 거기에 생존하던 민족의 흥망사는 엄연히 존재한다. 역사는 축적된 과거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채택하였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는 드높은 명예이고, 둘째는 세계인에게 그 값어치를 인식시킬 수 있는 기회이고, 셋째는 관광사업의 확장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오래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광개토대왕비는 아담한 건물 안에 보호하고 밖에는 방탄 유리까지 설치하였다. 지안(集安) 박물관도 건물 안팎을 새로 단장하여 관광객 맞이 준비를 갖췄다.
이러한 일련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중국의 정책 변경을 보면서 ‘오랫동안 오해로 일관한 역사’라는 표현을 되살리게 된다. 이는 7월 2일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 고구려사 특집면에 사용된 말이다. 중국 역사학자들이 고구려를 한반도의 정권으로 규정한 것이 ‘오해’였다는 뜻이다.
바로 이 점을 바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북한과 중국이 각각 신청한 고구려 유적의 내용에 따르면 이같은 우려를 안할 수 없다. 북한은 벽화 고분 16기를 포함해 총 63기 고분만 목록에 포함시켰다.
이와 달리 중국은 오녀산성, 국내성 등 고구려 초기 수도 및 관련 유적을 총망라하였고, 공식 등재 명칭도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 그리고 귀족의 무덤’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중국내 전면 개방된 유적들을 보러 관광객들이 세계에서 모여들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중국이 바라는 대로 ‘고구려 역사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고구려사 변방 불과’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고구려는 중국의 옛날 지방 정권’이 공인될 수 있다.
염려되는 상황들이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대처할 사안도 아니다. 남북한·중국 고대사 연구 한자들이 자리를 같이 하여 역사서 책들을 모아놓고 사실적(史實的)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줄 안다. 고구려사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중국이 그동안 ‘오해’를 하였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라기 보다는 그들이 고구려사의 위대함을 미처 인정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세계문화유산 보유 국가는 유적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한다. 명예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문화유산 보유국은 6년마다 관리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북한도 자국내 고구려 고분의 원상 복원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할 것으로 안다.
북한을 물질적으로 돕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미 세계문화유산 모두 7건을 목록에 올렸고, 잇달아 ‘97년 ‘창덕궁’과 ‘수원 화성’을, 2000년에는 ‘경주 역사유적지구’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을 등재한 남한은 북한을 기술적인 면에서 도와야 하겠다.
그 이유는 남북한에 산재한 역사적 유적은 개별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공동 한민족사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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