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핑카트 저 아래칸
얼마전 친구 하나가 코스코에서 페리에 병물 24병들이 한 박스를 샀는데 샤핑 카트 아래쪽에 넣었다가 잊어먹고 차에 싣지 않았다며 펄쩍 뛴 적이 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알고는 얼른 다시 가보았지만 있을 리가 있나, 11달러가 넘는 페리에 한 박스를 다시 사왔노라고 속상해 했다.
또 다른 친구는 한국에 있을 때 시댁에 들고 가려고 갈비를 잔뜩 사다가 자동차 위에 올려놓고는 깜빡 잊고 그냥 달렸다며 허탈해 했다. 그러고보니 나도 전에 어떤 노부부가 차 지붕 위에 먹을 것을 올려놓은 채 그냥 출발하는 것을 보고 쫓아가 경적을 울리며 알려준 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플라자 마켓에 아들과 둘이 장을 보러갔다가 딸기가 하도 먹음직스러워 한 박스를 집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식품들이 카트를 점점 가득 채우자 아들은 그 딸기를 꺼내 카트 맨 아래쪽에 따로 넣었다.
장을 다 보고 차에 가서 봉지봉지 물건을 싣는 동안 나와 아들의 눈에 그 딸기는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카트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는 동안에도 딸기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나 보다.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고 정리하는 도중 아이스크림을 보면서 딸기 생각이 났다. 아이스크림 넣고 갈아서 딸기 스무디를 해먹자고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으아악~ 딸기! 딸기가 없잖아!” 저절로 비명이 뛰쳐 나왔다.
“이걸 어쩌니, 너가 괜히 밑에 넣어가지구, 아이구 못살아. 니가 넣었으면 니가 꺼냈어야지, 어린것이 왠 까막정신이냐. 딸기 스무디 이제 못 해먹잖아!”
착한 아들은 당황하고도 미안해서 멀뚱하니 서 있고, 나는 괜히 애를 잡으며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있었다. 가격으로 치면 7.99달러. 사실 그렇게 속상할 액수도 아니었다.
사람 마음이 이상한 것은 차라리 돈을 그만큼 잃어버리면 덜 아까운데, 그게 물건이 되면 왜 그렇게 아까운 것일까? 누가 돈 37전 달라고 하면 우습게 줄 수 있지만, 우표 한 장 달라고 하면 괜히 아까운 것이 그렇고, 한국서 학교 다닐 때 버스 회수권이 그랬던 것 같다. 애연가들의 담배 한 까치도 아마 같은 심정일 것이다.
우리 신문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총무국에서 식권을 구입해야 한다. 10장 짜리 한 줄이 25달러인데 점심 시간이 되면 ‘빈대’ 생활에 힘쓰는 동료들이 이 식권을 얻으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후배들이 밥 좀 사달라고 하면 식당에 데려가서 몇십달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데 이 2.50달러짜리 식권 한 장 주기는 왜 그렇게 살 떨리는지, 그것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딸기를 그렇게 포기하려던 순간, 나는 혹시나 해서 마켓으로 전화를 했다. “카트 밑에 딸기를 두고 왔는데 혹시 누가 마켓으로 다시 가져온 일이 있습니까” 물었더니 전화를 받은 매니저가 놀랍게도 “여기 잘 보관하고 있으니 오셔서 찾아가십시요”라고 하는게 아닌가.
너무 감격하여 마켓으로 달려가는 동안 나는 무엇보다 ‘그래도 한국사람들이 낫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딸기를 도로 가져왔느냐”고 물었더니 매니저가 빙그레 웃으며 “아무도 가져오지 않았지만 잊고 안 가져가신 것이 분명하니 그냥 한 박스 가져 가시라”는 것 아닌가. 아마 그는 8달러짜리 딸기 하나 공짜로 먹으려고 전화로 거짓말을 하고, 일부러 마켓까지 가지러 오는 고객은 없으리라는 믿음으로 그런 서비스를 하였나보다. 그리고 그것이 마켓의 잘못도 아닌, 나의 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대단히 감동 먹고 말았다.
신문사로 걸려오는 소비자 불평건수의 1위는 언제나 마켓과 식당에서의 불친절과 부당함을 고발하고 호소하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시비의 발단은 아주 작은 것, 아주 작은 액수, 아주 작은 서비스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업주의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겠지만 모든 장사와 서비스의 기본이 고객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이처럼 8달러 정도에 감동하는 평생 고객을 수없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