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북가주 자선재단 대표>
나의 외아들 Jeff가 느닷없이 마누라들을 제기고 나와 단 둘만의 여행을 하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왠 둘만의 여행? 수년 전 인도에서 단 둘이 여행했던 것이 좋았던가(?) 아니면 나의 조언이 필요한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아무튼 나는 바쁜 스케줄을 접고 2003년 여름 아내들의 양해 하에 간단하게 짐을 챙겨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는 순간 순간 마음 내키는 대로 이것저것 구경하며 스케줄 없이 편하게 돌아다니다 잠은 깨끗하고 싼 모텔에서, 음식은 분위기 있는 고급 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서해안 도로를 따라 캐나다 국경까지 북상한 후 내륙으로 들어와 남하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그는 Tour Guide Book을 계속 뒤적거린다. 마린 카운티의 무어 파크에서 잠깐 인사만 하고, 1번 도로를 달리는 중 물가에 위치한 오두막 같은 자그마한 가게에 ‘생굴 있음’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와 급정거하며 후진하여 가게로 들어섰다.
물에 접한 가게 한 쪽에 손바닥만한 나무 Deck이 물 위에 걸려 있고, 코딱지 만한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있어 비집고 앉았다.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사정없이 내 이마를 익히고 끝도 없이 펼쳐진 출렁이는 바다엔 요트가 빽빽이 떠 있어 너무나 한가롭고 평화스럽다. 여행오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출렁이는 물결에 속삭이며, 생굴을 안주 삼아 화이트 와인으로 우리 둘의 여정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Point Arena에서 첫 날 밤을 보내려 방을 정하고 Point(만) 끝의 선창가로 나가보니 낚시꾼들이 배타고 나가 잡아온 살아있는 큰 생선들을 중간 토막의 살만 뜨고 나머지는 몽땅 바다로 던진다. 훌륭한 매운탕 감인데 하며 아쉬워할 때 어디선지 바다 갈매기가 여러마리 손살같이 날아와 물에 닿기도 전에 냉큼 낚아채어 공중전이 벌어진다.
자연을 사랑하고 공존하는 넉넉한 인심에 미소를 머금고 서해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금빛 찬란한 황혼을 바라보며 계속 캔 맥주를 마셨다. 황금빛이 구름에 연한 주홍색의 핏빛 노을을 그려내고, 그 후 암흑이 찾아와 비릿내를 맡으며 자리에 드니 내 고향 부산생각과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눈을 감고 누워 파도소리에 귀기울이며, 내일 아침을 먹기로 되어있는 Mendocino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 인다.
뜨거운 한 여름 태양아래 그림같은 맨도시노의 은빛 출렁이는 태평양을 바라보며 먹는 아침은 환상이었다. 서해안 곳곳 경치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때, Jeff는 캠코드를 갖다대고 경치를 설명하랴 또 감상은 어떠냐고 인터뷰를 하며 계속 촬영을 해댄다. 처음엔 어색해서 피하다가, 그가 조금 있으면 살아져갈 아버지 생전의 모습과 추억을 되도록 많이 담아두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좀더 진지하게 그의 인터뷰에 응했다. 우린 둘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의중을 알아챘고 서로의 아픔을 숨겼으며, 그의 사랑이 잔잔하게 나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난생처음 2인용 카누를 빌려타고 구명대를 입은 채 마음 맞춰 노 저으며 물장난도 쳤고 쇠철장 속에 닭다리를 매달아 바다 게를 잡아 삶아 먹기도 했고, 미국에서 제일 큰 굴 농장이 있는 곳에선 Oyster Burger라는 굴을 구워 빵에 넣은 별미의 음식도 맛 보았다.절벽 위에서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해안 동굴에 이르니 바다사자 수 백마리가 코 앞에 다가와 있고 철망 사이로 비린 내와 악취가 진동해 숨쉬기 조차 힘든다.
동굴 창문을 통해 가파른 절벽을 치켜보니, 절벽은 하얀 새 똥으로 도배질 되어 있고, 눈 앞에선 바다 갈매기 떼가 둥지를 트고 어미새는 입을 쪽쪽 벌리며 신경질 부리는 새끼들에게 모이를 준다고 정신이 없고 건너편 절벽 끝엔 그림같이 예쁜 빨간 등대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매일 10시간 이상 차를 달리며 우린 추억 만들기에 바빴으며 돈을 벌고 불리고 쓰는 법, 언제 집을 사고 투자는 어떻게 해야하며 종교와 자선의 관계 특히 삶의 균형 및 마누라에게 잘 보이는 법 등등 밤이 새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즐거운 여행이 끝나갈 무렵 Jeff가 Daddy L love you, I respect you, 그리고 아빠가 내 삶의 모델이니 잘 해야해라고 말했을 때 난 숨이 컥 막혀오며 번개불에 대인 듯 움칠했다.
감동 받아야 할 이 말이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이 아이 때문에 내 인생 고달퍼 지누나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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