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불교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욕망, 물욕(財物慾), 색욕(色慾), 식욕(食慾), 명예욕(名譽慾), 수면욕(睡眠慾)은 결국 ‘편하려는 욕구’와 ‘잘 나려는 욕구’ 두 가지로 묶을 수 있다.
세상에는 흔히 잘 나기 위해 성욕, 명예욕, 권력욕을 발동하다가 오히려 추해지고 망신살을 뻗치고 심지어는 집안과 나라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편하기 위해서 식욕, 성욕, 수면욕을 자꾸 발동하다가는 오히려 나태해지고 탐욕으로 과식과 오용, 남용,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되어 질병을 얻어 건강을 해치고 편해지기는커녕 불편해질 뿐만 아니라 목숨을 잃기도 한다.
종교 생활을 하고 수행을 하는 것은 그러한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 그리하여 참으로 잘나고 편한 천국과 극락의 생활을 실현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수행으로서 단식, 철야, 묵언 등을 하는 것은 그렇게 자꾸만 편해지고 잘난 척하려는 욕망을 극복해 보려는 노력이자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이다. 방편이라는 말은 수단이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 방편에 집착하여 억지로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다.
수행의 방편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채택하는 것은 다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순간, 그러한 욕망이 일어나는 자리가 어디인가? 어디에서 욕망이 일어나는가? 그 욕망을 지켜보고 억제하고 극복하려는 것은 누구(무엇)인가? 그것을 알아채고, 그것이 바로 본성자리, 마음자리 임을 깨닫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단식, 철야, 묵언은 속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속된 수단과 다를 바가 없다.
엄밀히 말해, 참된 용맹정진은 음식을 먹고 안먹고, 잠을 자고 안자고, 말을 하고 안하고 하는 형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참된 수행자가 하는 단식, 철야, 묵언은 억지로 해야되는 짓거리가 아니다. 해야 할 바가 원래 없고, 해도 한 바가 전혀 없는, 즉, 욕망이 원래 없어 일체가 공(空)한 줄을 알고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수행으로서의 단식, 철야, 묵언이다. 밥을 먹든, 단식을 하든, 잠을 자든 안자든, 말을 하든 안하든 늘 여여(如如)하게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옛날 도인들이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는다’고 하는 경지는 식욕과 수면욕에 끄달려 그때 그때 그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수준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먹어야 할 것이 원래 없고 먹어도 먹는 바가 없는 경지, 잠이 원래 없고 자도 잔 것이 없는 경지, 말이 원래 없고 말해도 말한 바가 없는 경지, 이러한 경지에서 단식하고, 철야하고, 묵언하는 자라야 욕망에 끄달리지 않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수행을 한다면서 형식에 집착하면 외도(外道)의 유위법(有爲法)이 되고 만다. 단식이나 철야, 묵언 등을 꼭 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하면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고행을 했다고 생각하여 무슨 큰일이라도 한 듯이 우월감을 가지는 거나 또 그를 통해 어떤 신통력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 등이 바로 外道의 有爲法이다. 달마대사의 『혈맥론(血脈論)』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오직 돈교(頓敎; 활짝 깨닫는 가르침)의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는 법을 보이기 위함일 뿐, 계행을 지키며 정진하고 고행하며, 불이나 물에 뛰어들고, 칼산에 오르고, 하루 한끼만 먹고, 오래 앉아 눕지 않는 법 등을 말하지 않았나니, 저들은 모두 외도(外道)요 유위(有爲)의 법이니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 항상 ‘지금 여기’,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주인공을 놓치지 않고 깨어 있도록 하는 것, 매순간 깨어있는 삶을 사는 것이 참된 용맹정진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이다. 따로 시간을 내고 형상을 짓고 폼을 잡는 것은 상(相)을 내는 것이고 티를 내는 것이다. 승속(僧俗)의 상(相)도 없고, 남녀노소의 상(相)도 없는 자라야 진짜 수행자이다. 인연따라 수연행(隨緣行)을 펼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대자유해탈인(大自由解脫人)이요, 도인(道人)이다.
비록 사흘간의 용맹정진이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진정한 수행으로써 단식과 철야, 묵언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의 정진을 일상의 삶 속으로 회향(回向)한다면 우리의 삶은 번뇌 망상에 끄달리는 중생의 삶에서 늘 깨어있어 참으로 편안한 부처의 삶으로 전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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