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신(보스턴)
6.25 하면 ‘전쟁’이라는 말이 생략된 말이지만 그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번개같이 그 당시를 회상하며 흥분한다. 하지만 전후 세대들은 백문이 불여일견인지 그리 관심이 없나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인민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한국을 침공하여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계속 남진했는데 우리 국군은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맥주병에 휘발유를 담아 몸과 같이 적의 탱크에 부딪쳤으니 얼마나 참혹하고 비참했나.
필자는 당시 고양군 원당으로 피신하기 위해 양수리 북한강을 나룻배로 조심스럽게 반쯤 건넜을 때 난데없이 미군 비행기가 나타나 굉음과 함께 기총소사를 가해 왔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강에 뛰어들어 헤엄쳐서 나왔다.
이 공격으로 사공이 다쳐서 쓰러졌고 여자 한 사람이 즉사했다. 인민군에 쫓기고, 미군기의 공격을 받으니 어디로 가야하나 생각할 여유도 없이 총을 든 사람이 검문을 하는데 나는 물에 젖은 가짜 증명서를 보이고 통과했지만 젊은이 몇은 끌려가고 말았다.
이리하여 산길을 더듬어 원당을 찾아가서 낮에는 산에 숨고 밤에는 늦게까지 밭고랑에서 지내야 했는데 어느날 밤 늦게 서울과 개성을 잇는 국도에 몇천명이 지나가는지?
한 시간 정도 발자국 소리가 났고 총소리도 두어번 났는데 아침에 들리는 말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애국자들을 북으로 끌고가는 중에 한 사람이 그 동네를 지나다가 자기 집앞에 이르자 주저앉으므로 그 자리에서 총살했다는 것이다.
이틀 후에는 산중에 숨어있는데 총소리가 요란해 보니 7,80명을 줄로 묶어놓고 무차별 소사한 시체의 수라장을 몇 사람이 울면서 누굴 찾고 있었다. 이들은 고양 금융조합 창고에 갇혀있던 민간인들이란다.
그날 밤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대포 소리와 조명탄이 낮처럼 비쳤는데 그것이 미군의 인천 상륙작전이었던 것이다.서울로 가는 국도에는 인민군이 묻어놓은 지뢰가 무수히 많았는데 달아나던 적군 트럭이 지뢰를 밟고 부서진 차에는 시체들이 있었다.
지뢰를 제거하면서 서대문안 고개에 들어서는데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미군이 쓰러졌다. 어디서 날라온 총알인지도 모르고 모두 엎드렸다. 잠시 후 달아나는 패잔병들을 집중사격으로 모두 섬멸했다.잔연이 모락모락 오르는 독립문에 다다르니 인민군 시체 30여구가 흩어져 있다. 혹시나 북
에 있던 내 동생이 있지 않을까? 기웃거렸는데 하나같이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었고 몸은 군복이 터져나갈 것처럼 부어있어서 그게 그것 같았다.
적십자병원 뒤쪽 언덕 밑에는 100명이 넘을 것 같은 민간인이 줄에 묶인채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모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었다. 여러 사람을 한 줄로 앉혀놓고 뒤에서 쏜 것이란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랴!
여기 저기 지키는 사람 없는 바리케이트를 지나 왕십리 우리집에 왔는데 폐가가 되어 텅 비어 있었다. 이 풍진세상을 넘어 지옥이 아닐까? 단숨에 걸어서 양평에 갔는데 부락이 조용했다. 유지라는 사람들은 모두 끌려가 총살 당했고, 국군이 들어오자 애국청년들이 공산당에 부역한 사람들을 모두 총살했기 때문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내 아내는 보안대원들이 발부리에 총을 쏘며 나를 내놓으라고 했다며 산 밑의 어느 학부형 집에 숨어있었다.석달을 숨어 살다보니 산 사람 보다 죽은 사람을 더 많이 보았나 보다.마침내 3년1개월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종전이 아닌 휴전을 했는데 국군의 전사자 15만7,530명 외 부상, 실종, 포로가 90만1,658명, 민간인 사망이 24만4,663명 외 실종, 피랍, 피살이 51만6,680명, 미군의 사상자 15만7,530명 외 포로, 실종이 1만5,000명, 유엔 21개국의 사상자가 33만명이며 초토화 된 국토와 도시 등의 피해는 모두 자유의 비싼 값이었다.
반공은 우리의 국시이기 전에 차라리 우리들의 삶이었건만 그 세대가 계속 사라지는 가운데 전후 세대들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북의 핵은 우리 것이며, 미군은 통일의 장애물이니 나가라, 중국과 손 잡아야 하며, 보안법은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옳은가? 이것은 모두 북한이 주장하는 사항들인데...
미국의 역사학자로서 ‘모리스’는 ‘미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을 지원하지 말라,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배반의 역사를 되풀이할 것’이라고 했다.
많은 수의 미군 철수가 시작되나 보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고 했던가. 더 이상 제 2의 6.25는 안된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54년 전 6.25를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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