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작년 2월에 ‘만두’를 커버스토리로 쓴 적이 있다. 그때 쓴 글을 여기 옮겨본다.
“겨울 추위가 끝자락에 매달려 기승을 부리던 이때쯤 한국에선 집집마다 벌어지던 연례행사가 있다. 만두 빚기.
김장김치가 시어지는 2월말에서 3월초, 대부분의 가정들은 독에서 꺼낸 신 김치를 포기째 우려내 만두속을 만들고,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두를 빚었다. 만두속이래야 별거 있었나. 김치 다진 것과 두부 으깬 것, 숙주나물에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조금씩 넣었던 것 같다.
온 가족이 동원되는 서민음식 만두는 밀가루 반죽과 만두피 때문에 아버지와 오빠도 일을 거들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남성들이 요리에 참여한 유일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우리집은 식구가 항상 열명도 넘던 대가족이라 커다란 다라이 하나 가득히 만두속을 만들었고, 그만큼 빚어낼 만두피를 찍어내려면 엄청난 양의 반죽을 해야했다. 있는 힘을 다해 땀을 뻘뻘 흘려야 하는 반죽은 아버지의 몫, 반죽을 커다란 나무도마 위에 놓고 밀대로 힘차게 밀어대는 일은 오빠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밀어낸 얇은 반죽을 주전자 뚜껑이나 스텐레스 공기로 돌려 만두피를 찍어내는 일은 가장 어렸던 나와 동생이 했다.
엄마와 언니들은 쉴 새없이 손을 놀리며 만두를 빚었다. ‘만두를 예쁘게 빚어야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어른들 이야기 때문이었는지 다들 모양내느라, 터지지 않게 빚느라 심혈을 기울였다. 빚은 만두는 밀가루를 흩뿌린 커다란 교자상들 위에 차곡차곡 줄을 맞춰 정렬했는데, 교자상 하나가 다 차기 무섭게 곧바로 한 구석이 휑하니 비곤 했던 것은 깊은 겨울, 밤을 새워 빚는 동안 부엌에서 큰솥에 물을 끓이고 돌아가며 계속 끓여먹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먹었던 만두의 맛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언니들은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재료가 더 많고, 질 좋고, 풍성하건만, 아무리 해도 그 맛이 나지 않는건 무슨 이유일까. 그리고 지금은 왜 엄마들이 만두를 빚지 않는 것일까”
이제 나는 만두를 빚어야겠다. 다시는 냉동 만두를 사지 않으련다.
‘쓰레기 만두’ 사건으로 화가 나지 않은 한국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명단이 발표된 회사의 제품을 사먹은 적이 없다해도 “그럼 다른 만두는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 안 해본 주부가 있을까? 나아가 ‘다른 냉동식품들은 과연 믿을 수 있는가’로 의심이 번지면서 “도대체 뭘 먹으란 말이냐”고 분통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가까운 동료 한사람은 딸아이가 도투락 만두를 좋아해서 몇 년동안 도투락 만두만 사먹었다며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도대체 한국의 음식산업은 왜 그렇게 엽기적일까. 막걸리에 우유 넣기, 담배꽁초 넣은 커피는 그나마 애교 있는 옛날이야기이고, ‘석회 두부’에 ‘수은 콩나물’, ‘대장균 냉면’이 모자라서 이제는 ‘쓰레기 만두’까지 나오다니, 미국에서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감사한다면 한국서 당하고 있는 사람들 약올리는 얘기가 될까? 아니, 사실은 미국에서 살고 있어도 먹거리의 상당부분을 한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그렇고, 우리의 식탁이 이제 가공식품에 너무 많이 의존해있음을 인정해야겠다. 가공식품 없이 요리를 해야한다고 가정해보면 일단 상을 차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국과 찌개의 주재료인 간장, 고추장, 된장을 요즘 집에서 담가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김치는 물론이고 만두, 라면, 오뎅을 비롯해, 젓갈과 밑반찬도 그렇고, 얼마 전까지 모두 직접 재어서 구워먹던 김까지 지금은 당연히 사먹는 세상이 되었다.
불과 20~30년전,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인스턴트식품, 가공식품이란 개념이 아예 없었다. 다들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도 끓여먹고 칼국수도 끓여먹었다. 빨간 고추를 널어말려 고춧가루를 빻고 고추장을 담갔다. 메주를 띄워 간장과 된장도 담갔으며, 추석이면 다같이 송편을 빚었고, 김장을 했고, 지금은 흔해빠진 가래떡도 그때는 명절에 방앗간에 다녀와야 먹어볼 수 있는 특별음식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식생활은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변했다. 문제는 이제 장을 담그고 만두를 빚으며 사는 생활로 우리가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여유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세대는 전통음식, 그 요리법의 기본도 모른다는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