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재혼식을 한 수필가 L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연세 70에 재혼을 한 것이 다. 워낙 고우셔서 수절하고 계신 동안 프로포즈도 많이 받았지만, 연세가 있으시니 그냥 홀로 사실 줄 알았다. 신랑(?)은 소문과는 달리 74세의 같은 교회 집사님이셨다. 소문은 요즘 유행하는 연하의 신랑이라고 했었는데 아니었다.
당연히 주례는 두 분이 함께 출석하는 교회의 원로목사님이 하셨다. 둘 다 짝을 사별한 완벽한 싱글이어서, 재혼식의 주례는 서시지 않는다는 목사님도 흔쾌히 허락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 재혼식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주차장이 없어 되돌아간 이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거의 5개월만에 그런 사람을 불러 뒤풀이를 하시는 모임이었다.
멕시코에서 농장을 하시는 K 시조시인 내외와 늘 아침에 시를 보내주는 K 시인 그리고 내가 참석을 하였다. 당연히 화제는 재혼이었다. 쑥스러운 새신랑은 안나오시고 재혼식의 사진만 가져오셨다.
그런데 재혼을 한 그 부부가 살림을 따로 합치지 않고 예전처럼 노인아파트에서 각기 산다는 거였다. 식사만 이 선생님 댁에서 하고 잠은 각자 자기의 아파트로 돌아가 주무신다 하여 모두들 웃었다. 파격적이어서.
이유인즉 혼자 살 땐 월 200불만 내도 되는 노인아파트가 둘이 살면 값이 두 배로 되어 약 400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돈 내고 두 채의 아파트를 갖는 게 나아서 합치지 않고 둘이 딴 살림을 하는 것이라나? 처음엔 실리적인 이유에서였는데, 살다보니 너무 편리하고 좋다며 항상 연애하는 기분이라고 하신다. 권하고 싶은 방법이라나? 재혼을 하라는 소리인지... 사별을 하라는 소리인지... 웃었다. 듣고 보니 괜찮을 것 같았다. 후에 그런 ‘행운’이 온다면 그러하리라 생각해 보았다 잠시.
남자 분이 우스개 소릴 잘하셔서 교회의 노인 골프모임에 갈 때마다 늘 까르르 웃다가 호감을 갖게 되었노라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저 남자는 유머가 있어야 한다나? 얼마 전 신문에서 신세대 신부들도 신랑의 유머를 결혼의 첫째 조건으로 친다고 하는 기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나이 먹어도 여잔 여자인 모양이었다. 감정은 소녀적 감정 그대로이신 듯 하였다.
에구~ 내 팔자야...나는 내가 우스개 소리를 해야 그저 씩 웃을 뿐으로 유머감각은 ‘꽝’인 남자와 살고 있다 여태껏. 아무튼 선생님의 재혼이 추해 보이지 않고 신선했다.
그 다음날은 3년 전에 홀로 되신 소설가 J 선생님을 만났다. 연세가 60이 넘으신 선생님은 부군이 남겨두고 가신 회사를 정열적으로 운영하고 계신다. 오히려 사세가 확장되고 인도네시아에도 큰 공장을 세우셨다고 하신다. 더 예뻐지시고 더 멋쟁이가 되셨다. 얼마 전 출판 기념회 때 접수 봐드린 턱을 쓰시는 거였다.
내 단짝 소설가 P와 나갔다. 근사한 일식을 쏘시면서, 우리의 질문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리의 궁금증은 왜 재혼을 안 하시냐?는 거였다. 그랬더니 이런 희한한 대답을 하시더라.
“하루가 좋으려면 골프를 치고, 한 달이 좋으려면 결혼을 하고, 6개월이 좋으려면 이혼을 하라”는 말이 있다나? 그러니 왜 재혼을 하겠냐고 하신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로 아마도 선생님이 지어내신 말 같았다.
그러면서 남자친구가 설사 있다하여도 그 족쇄를 다시 찰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그저 보고싶을 때 보는 쿨한 관계로 연애감정으로 애틋하게 사시겠다고 하신다. 가끔 남편의 묘지에 가서 큰소리도 치고 넋두리도 하며 자유롭게 사시겠다는 선생님.
70대의 수필가 L 선생님이나 60대의 소설가 J 선생님이 매우 부러웠다. 40대인 나도 얼마든지 동경할 생각이 아닌가 싶었다, 진짜로 부러웠으니 말이다.
두 번의 모임에 다녀온 후 남편에게 말했다. 너무 근사하지 않느냐고 너무 동경한다고. 그랬더니 글쓰는 이들 모임에 당분간 나가지 말라고 금족령 떨어졌다. 나는 집에 갇힌 신세 되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여.
이제 보니 같이 산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수감생활’ 중에 할말은 아니나 따로 떨어져 살아도 영혼이 교감되는 생활, 이것이 정말 동반하는 삶이 아닐까한다. 남편이 이 글 보면 금족령 연장될라.
이정아<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