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월화수목금 주 5일 도시락을 싼다.
내 도시락이 아니라 남편의 도시락이다.
나의 도시락 싸기 이력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결혼 초 남편이 스몰 비즈니스를 할 때부터 싸기 시작해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중간에 얼마씩 쉬기는 했지만 통산 6년 정도는 꼬박 도시락을 싼 것 같다. 남편은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도시락을 싸가야 할 상황인 직장들만 골라서 다니고 있다. 이번에도 새로운 지점으로 발령 받았다며 옮긴 곳이 인근 몇마일 내에 식당이 전혀 없는 곳이라 해서 도저히 모른 체 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 도시락 싸기는 모든 주부의 악몽이다. 너무나 귀찮지만 소홀히 할 수도 없고, 힘은 힘대로 들면서 표는 절대로 안 나는 일이 바로 도시락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오랜 경험으로 인하여 나의 도시락 싸기는 이제 수준급에 이르렀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열성적으로 도시락을 쌌기 때문에 남편이 일을 하러 가는 것인지, 도시락을 먹으러 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고, 나도 마치 도시락을 싸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그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10년전 이야기지만, 꼭두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용으로 꼭 새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밥도 흰밥이 아니라 일곱가지 잡곡을 섞은 현미쌀을 전날 밤부터 물에 불려놓았다가 압력솥에 지었던 것이다. 반찬은 김치 포함하여 최소한 대여섯가지를 오밀조밀 싸고 김까지 챙겨 넣었다.
여기까지가 점심 도시락이고, 아침식사용으로 금방 끓인 커피를 마호병에 담고 빵과 샐러드, 직접 만든 드레싱을 따로 넣었으며, 오후 출출할 때 먹을 간식으로 과자와 과일까지 깎아 따로 집어넣었으니 그때의 남편 도시락 가방이 얼마나 컸던지 별명이 ‘요구르트 아저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내가 한 일은 ‘미친 짓’에 가까웠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집도 멀어서 출퇴근 트래픽이 심했고 아이도 어려서 손이 많이 가던 시절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안 했어도 남편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싸는가? 옛날보다 훨씬 간소해졌다. 너무 잘 싸려고 애쓰다가 도시락이 ‘웬수’가 되고, 그 도시락을 매일 가져가는 남편마저 ‘웬수’가 되는 경험을 또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일단 밥은 흑미밥을 한번에 2회분씩 짓는다. 흑미밥은 맛이 구수할뿐더러 미리 불리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서 흰밥 짓듯이 쉽게 지을 수 있다. 국은 싸지 않는다.
반찬은 언제나 네가지. 거기에 김과 김치를 따로 더하면 여섯가지인 셈이다. 반찬의 종류는 주로 밑반찬들이지만 매일 한두가지는 새로 만들어서 넣는다. 예를 들어 고기 알쌈이라든가, 어묵 볶음, 소시지 달걀말이, 감자조림 등의 반찬은 그때그때 만들어 싸는 것이다.
가끔은 저녁식사에서 남은 나물이나 반찬을 이용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도시락에 넣을 요량으로 아무리 많이 음식을 해도 남편과 아들이 식탁에서 다 먹어치우기 때문에 남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밑반찬은 열가지 정도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에 서너가지씩 바꿔가며 싼다. 과거에는 밑반찬들을 거의 모두 직접 만들었으나 요즘은 반 정도는 마켓에서 사다 쓴다.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은 멸치볶음. 우엉볶음, 연근조림, 장조림, 오이지 무침, 오징어채 무침 등이고, 사는 것은 콩자반, 양념깻잎, 젓갈류 같은 것들이다.
그동안 터득한 도시락 싸기의 상식은 반찬이 약간 짭짤해야 하며, 물기가 적어야 하고, 매운 것과 심심한 것을 적절히 배합해야 하며, 뜨거운 것은 반드시 식혀서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생선반찬과 고기반찬을 함께 싸지 않는다. 생선반찬에는 멸치조림이나 어묵, 젓갈류를 함께 싸고, 고기반찬에는 감자나 야채류를 함께 싸야 맛이 어울리는 것이다. 반찬끼리 맛이 섞이지 않도록 알미늄 포일이나 베이킹 포일로 칸막이를 하는 것도 중요한 요령이다.
맨날 매식하는 나에 비하여 남편은 영양식인 나의 도시락을 너무나 인조이하고 있다. 어쩌면 주위에 식당이 있는데도 도시락을 먹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건 아닌지, 가끔씩 불현듯 직장을 찾아가 확인하고픈 생각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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