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자라는 모습은 아름답다. 거기서 들려오는 생명의 고동을 느낄 수 있다. 겨우내 축적된 대지의 에너지는 하늘 향해 힘껏 입김을 뿜어내고 있다. 성장하는 현상은 오직 자연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넓은 들판을 달려가는 어린이들의 모습, 나무가지에서 지저귀는 새들, 땅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들이 실컷 누리는 온갖 기쁨은 그들의 생명력에서 오는 희열이다.
그런데 이 생명력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하나도 어떤 고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없다. 확연히 눈에 보이는 변화나 성장도 있고, 내적인 발달도 있어 판별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자체 내의 힘과 외계가 주는 촉진제의 힘을 받아 하루하루 자라는 것이 분명하다.
초목들이라면, 따뜻한 햇볕, 몸을 적셔주는 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나비같은 곤충의 방문... 등이 성장의 촉진제가 된다. 동물들이라면 자연의 신비로 생각되는 먹이사슬, 때때로 엄습하는 더 힘이 센 동물들의 습격 등이 성장의 촉진제가 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는 어떤 촉진제가 있을까.
지금은 자라는 계절이다. 지역사회에서는 각종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평소에 적당한 촉진제를 공급하고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기획하여 추진하는 행사들은 자녀들에게 큰 자극을 준다. 그것들은 그림그리기 대회·한국 놀이 한마당·글짓기 대회·노래자랑·어린이 예술제·국악 대회·붓글씨대회 등의 이름으로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자의로 참가하는 각색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반면에 무관심하거나 방관자로 머무는 어린이들이 있다. 이런 경향이 그 부모의 행사에 대한 관심도에 따르기 쉽다. 부모의 관심이 높더라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참가시키지 못할 수가 있다.
콘테스트의 경우라면 수상자가 안되면 열등감을 가지게 될까봐 참가치 않는 수도 있다. 그러나 심각해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모든 행사를 삶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 번의 게임에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삶이 게임의 연속이라면 겁낼 것이 없지 않은가. 어느 연극인의 말이다. ‘비록 실패한 공연이었더라도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행사에 참가하든지 그 결정은 어린이들의 선택이라야 바람직하다. ‘이번 주말에 한국놀이 한마당이 열리는구나’ ‘그래요? 나도 가고 싶어요’ ‘그럼 온 가족이 가기로 하자’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서 참가 여부가 결정된다면 자연스럽다. ‘아빠 나 노래자랑에 나가고 싶어요’ ‘좋은 생각이다. 그래 무슨 노래를 부르겠니?’ ‘고향의 봄이요’
‘아빠 엄마하고 같이 연습을 많이 하자’ 이렇게 해서 나간 노래자랑에서 상을 못 탄들 어떻겠는가. 어린이는 출연을 결정하고, 연습을 거쳐 출연하는 과정에서 훌쩍 크게 된다.
‘엄마, 나 그림그리기 대회에 나가기 싫어요’ ‘왜?” ‘상을 못 타면 어떻게 해요?’ ‘그게 무슨 걱정이냐? 여럿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면 얼마나 즐겁겠니. 며칠 더 생각해 보렴’ 어떤 모임에 참가하든지 자녀에게 강요할 일은 아니다. ‘오늘은 국악대회를 구경 가자’ 자녀와 함께 참가한 국악대회가 끝나고 ‘엄마, 아빠 나도 부채춤 추고 싶어요’ ‘그렇지?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너도 배울 수 있도록 도와 줄게’ 이렇게 되면 어린이는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된다.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좋은 까닭은, 그들이 삶의 폭을 넓혀야 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 무슨 재주가 있는 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일은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특기를 알아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이 되겠는데 쉽게 세속에 흐른다.
이 시대는 직업의 종류가 증가되는 추세에 있다. 새로운 일거리가 나날이 창출되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지금의 어린이들은 기존의 직업 중에서 선택하는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을 것이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를 마련하는 각종 단체에 감사하면서 그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풍부한 체험을 쌓기 바란다. 자라는 계절에 필요한 영양제가 담뿍 담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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