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편집부 부국장>
북미주나 미국도 아니고, 하다못해 캘리포니아 전체도 아니고, 일개 샌프란시스코 지역이? 주류사회 단체도 아니고 소수계 연합단체도 아니고 한인 상공회의소가? 그 옛날 5일장같은 한인업소 특별판매전도 아니고 무역박람회를?
지난해 말 취임한 샌프란시스코 한인 상공회의소(이하 SF한인상의) 유대진 회장이 2004년 상반기에 한국 무역박람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받은 의아스런 느낌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모든 걸 덮어두더라도 준비기간이 문제였다. 박람회 개최안이 SF한인상의 이사회를 최종 통과한 것이 1월 말이었다. 불과 석달 남짓한 기간에, 게다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나 크고작은 민·관영 기업들이 올해 주요행사 일정과 예산 집행계획을 다 짜놓은 터에 무슨 수로 비집고 들어가 지원다운 지원을 받아내고 참가다운 참가를 유도한단 말인가. 또 가뜩이나 늦은 박람회 준비의 막판피치를 올릴 즈음 터진 탄핵정국과 총선바람도 불길한 예감을 더해주는 요소였다. 어떻게 돼 가느냐는 물음에 유 회장 자신도 잠이 오지 않는다 두세건 몇십만달러만 (계약이) 성사됐으면 원이 없겠다고 걱정가득 넋두리를 흘렸을 정도다.
올해로 네번째를 맞은 동포한마당 잔치도 문제였다. 무역박람회 하나도 벅찬 마당에 두 행사를 겹치기로? 몇몇 세부행사 진행을 다른 단체에 맡긴다고 하지만 ‘너 따로 나 따로’가 되지 않을까? 게다가 지난주 초 일기예보는 행사당일 새벽에 비까지 온다던데?
그러나 모든 것은 기우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무역박람회에는 한미 양국 60여개 업체가 참가해 약700만달러 상당 수출입계약이 맺어졌다. 몇건의 후속협상까지 기대대로 이뤄지면 거뜬히 2,000만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동포한마당 잔치에도 남녀노소 1,200여명이 모여 신나는 하루를 즐겼다. 단체간 유기적 협조로 이렇다할 잡음 하나 없이 끝났다.
성공의 아버지는 70명이다. 잘된 일에는 생색내는 사람이 많음을 비꼬는 서양속담이다. 그러나 이번 두 행사의 성공을 두고 내 덕분이라고 우쭐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준비단계부터 지켜본 기자 입장에서 성공의 주역들을 들라면 70명, 아니 700명도 더 꼽고 싶다. 드러난 일꾼들 숨은 일꾼들의 노고를 칭찬하는 것은 무슨 행사만 끝나면, 특히 코빼기도 안비쳤으면서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붙이는 묘한(?) 사람들에게 뭔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는 의미에서도 좋고,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멋진 카피처럼 앞으로 더 잘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준다는 의미에서도 좋지 않을까.
우선 두 행사를 진두지휘한 SF한인상의 유대진 회장과 김덕천 이사장(동포한마당 준비위원장) 주웅만 수석부회장(무역박람회 준비위원장). 이들 3총사는 참가업체를 한곳이라도 더 늘리려고 생업을 제쳐두고 한국을 오가랴 밤잠을 아껴가며 전화통과 씨름하랴 무던히 애를 썼다.
한국도 아닌 말레이시아의 한적한 바닷가에 있으면서 싱가폴 수입업체와 주로 거래(월평균 100만달러)하는 경향물산이, 한국으로 납품하는 연간 수출액(약80만달러)을 훨씬 웃도는 480만달러 대박계약을 터뜨린 데에는 세라 정 이사와 김상언 고문의 공이 컸다. 정 이사는 경향물산 사장인 오빠를 붙들고늘어져 머나먼 걸음을 하게 했고 김 고문은 계약당사자들이 가격을 놓고 망설일 때 이틀동안 ‘밤샘 술상무’ 역할로 결단을 이끌어냈다. 모두들 돌아간 뒤 끝까지 행사장에 남아 흩날리는 종이는 물론 잔디틈 담배꽁초까지 일일이 치운 우갑숙 부회장 등 다른 임원들도 모두 성공의 주역들이다.
동포한마당의 백미 중 하나였던 노인노래자랑 진행을 맡고 두둑한 상품까지 내놓은 상항지역 한인회(회장 유근배), 어린이 글짓기와 그림그리기 대회를 빈틈없이 수행한 북가주 한국학교 협의회(회장 장동구), 일반인들이 수시로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등 어려움에도 역정 한번 내지 않고 묵묵히 어린이 축구대회를 치러낸 상항한인축구협회(회장 최원), 노인들을 위해 푸짐한 점심식사를 제공한 총영사관(총영사 김종훈) 등도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서울-샌프란시스코 자매도시 위원장인 해리 김 SF커미셔너는 행사장 할인대여 등 시청측 협조를 얻어내고 개빈 뉴섬 시장이 이날(8일)을 ‘코리아 엑스포 및 코리안 커뮤니티 데이’로 선포하도록 했다.
또 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바람부는 무대에 올라 서너곡을 열창한 초청가수 박래일씨, 멋드러진 어우동 춤사위로 갈채를 받은 김일현씨, 뙤약볕 내리쬐는 무대 뒤편에서 장단 맞추랴 흥 돋구랴 온종일 고생한 ‘영원한 악사’ 양재경씨, 아무런 직책도 품삯도 없이 다리 한번 뻗을 겨를없이 공항∼호텔∼행사장을 오가는 안내운전을 비롯해 궂은일을 도맡은 이동영씨 등등 제한된 지면 때문에 혹은 이름을 깜박해 일일이 소개는 못하지만 이런 행사가 열릴 때면 만사 제쳐두고 나와서 일을 거드는 사람들은 그밖에도 수두룩하다.
차린 음식이 아무리 푸짐해도 손님 없는 잔치는 삭막하다. 그런 점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아야 할 주인공들은 놀곳도 많고 할일도 많지만 기꺼이 행사장을 찾아 함께 웃고 함께 즐긴 1,200여명의 참가자들이라고 본다. 다만 1,200여명의 두곱 세곱 네곱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을 따름이다. 오는 가을 한국의 날 축제에서는 이처럼 칭찬하고 박수쳐줄 사람들 숫자가 그렇게, 아니 그보다도 훨씬 많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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