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머리 육수
가끔 남편에게 나의 요리솜씨를 슬쩍 묻는 사람들이 있다.
푸드 담당이므로 당연히 요리를 잘 할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혹은 평소 내가 신문에서 잘난 체를 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 그런지 확인차 넌지시 물어보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꼭 두가지를 칭찬하여 나의 체면을 살려준다. ‘국을 시원하게 잘 끓인다’와 ‘나물을 맛깔스럽게 잘 무친다’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여자 쪽에서 돌아오는 질문이 ‘국을 어떻게 끓이길래 시원하냐?’는 것이다. 다음은 그에 대한 나의 성의 있는 답변이다.
맛있는 국의 비결은 쇠고기 양지머리를 우려낸 국물로서, 나의 냉장고에는 언제나 노리끼리하고 맑게 끓여낸 양지머리 육수가 들어있다. 이 양지머리는 소의 가슴부위 살로서 기름기가 거의 없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이 고기를 덩어리째 찬물에 담가 두어시간 핏물을 빼낸 후 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끓인 것이 양지머리 육수이다.
처음에는 조금 센 불에 올려서 한번 우르르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여 두어시간 정도 푹 끓이는데 여기에 주의할 점들이 몇가지 있다.
처음 끓어오를 때까지는 반드시 냄비를 지키고 있는 것이 신상에 좋다. 그렇다고 딱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고 그동안 부엌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고기 국물이 처음 끓기 시작할 때 동작이 빨라야 하는 이유. 마구마구 올라오는 거품과 기름, 고기 찌꺼기를 숟가락으로 걷어내지 않으면 국물이 탁해질뿐더러, 끓어오르면서 냄비 뚜껑을 박차고 나온 기름국물들이 온통 오븐 주위과 부엌 바닥까지 튀어 따로 청소를 해야 하고, 냄비 뚜껑과 벽을 따라 올라온 거품 찌꺼기들이 말라붙어 설거지할 때 쉽게 닦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 알면서도 육수를 올려놓고는 깜빡 잊어버려 당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므로 독자들께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하는 것이다.
거품을 다 걷어내고 나면 불을 약하게 줄이는데, 이때 통후추 한줌과 마늘 몇 쪽을 넣고 아울러 냉장고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당근, 양파, 셀러리 등 야채를 꺼내 함께 넣고 끓이면 육수 맛이 한결 개운하고 깊어진다. 생강을 좀 썰어 넣으면 누린내가 가신다고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생강 넣기를 별로 권하지 않는다. 생강 맛이 너무 강해서 육수의 구수한 감칠맛을 다소 해치기 때문이다. 꼭 넣고 싶으면 아주 작은 한 조각 정도가 좋겠다.
이렇게 두어시간 푹 고기를 삶으면 노리끼리한 육수가 완성되는데(고기에 비해 물을 너무 많이 잡았을 경우 약한 불에서 한두시간 더 끓이면 된다) 이 육수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양하게 사용한다. 육수 그 자체로 고기장국이나 육개장, 떡국이나 만두국을 끓이기도 하고. 카레라이스 만들 때도 고기를 따로 볶을 필요 없이 이 국물을 사용하면 간단하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는 육수와 물을 반반 섞은 후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다시 한번 끓이면 남편이 말하는 ‘시원한 국’이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어묵이나 감자 조릴 때 조림장에 섞기도 하고, 닭고기 요리, 생선 조림에도 사용하며, 쌈장이나 양념장 만들 때도 조금씩 넣는다. 내가 만든 어묵볶음을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맛있다고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나는 이 육수의 감칠맛에 있다고 생각한다.
육수는 보통 냉장고에서 일주일 정도는 무난하게 견디지만 오래 두고 먹어야할 경우 한번 먹을 만큼씩의 양을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담아 냉동칸에 얼려놓아도 좋다.
참고로 우리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약식 육개장’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이것은 퇴근하자마자 빨리 만들어 먹기 위해 내가 개발한 약식인데 그런대로 육개장 맛을 낼 수 있어서 바쁜 주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냄비에 양지머리 육수를 넣고 끓인다. 육수 내고 남겨둔 고기 덩어리를 손으로 족족 찢어 다진 마늘, 국간장, 깨소금, 고춧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놓는다. 콩나물을 씻어 손질해둔다.(숙주나물은 빨리 상하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파는 손질해 반으로 길쭉하게 자른다. 육수가 끓으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넣고 한번 더 푹 끓인다. 소금으로 간하고 마지막에 달걀 푼 것을 넣으면 얼큰한 육개장 완성.
따끈따끈한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먹고 난 아들이 반드시 뽀뽀로 화답하는 간편한 일품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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