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미각엔 못당해”
포도밭에 강우량 측정기구등 설치
컴퓨터로 기후변화·발효과정까지 관리
아무리 기술 발달돼도 마지막 결정은 사람이
클로 라샹스의 창립자 빌 머리가 컴퓨터로 온도가 조절되는 발효 탱크를 첵업하고 있다.
와인이라고 하면 한적한 시골에 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일꾼들이 커다란 통 속에 맨발로 들어가서 포도를 밟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 쪽에서는 잘 가꾸어놓은 밭에서 각종 야채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좀 떨어진 곳에는 소나 양을 풀어놓고 키우는 곳도 있어서, 문명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에는 포도 주스가 컴퓨터의 선을 타고 흘러서 와인으로 변한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 이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와인 저장고에 장치된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로부터 범용 시뮬레이션(GPS)이 장착된 트랙터까지, 와인메이커들은 컴퓨터와 하이텍의 도움으로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려 애쓰고 있다.
좋은 와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년, 혹은 수백년에 걸쳐서 여러가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후에야 떼루아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고, 매년 고른 품질의 와인을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휼렛-패커드사의 경영진이었다가 은퇴한 빌 머피(Bill Murphy)의 경우, 컴퓨터와 하이텍 기술의 도움으로 100년에 걸쳐서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을 불과 수년만에 얻고 있다.
머피는 산호제에서 남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샌마틴 리조트 근처에 클로 라샹스(Clos LaChance) 와이너리를 열었는데, 하이텍 기술의 도움으로 떼루아에 대해 훨씬 빨리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연적인 현상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알 것은 빨리 알고, 이해할 것은 빨리 이해한 후,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일은 제대로 컨트롤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습도, 강우량, 풍속 등에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는 탐사기구를 포도밭에 설치하고, 이러한 기후의 변화에 따라 포도열매와 포도나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다.
포도주 저장고에서는 포도를 수확하여 주스를 내고 병으로 옮겨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함으로써, 블렌딩한 와인들을 식별하는 일과 각 품종을 블렌딩하는 비율의 산출작업이 훨씬 쉬워졌다. 또한 클로 라샹스에서는 와인메이커 스티븐 텝(Stephen Tebb)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탱크마다 온도를 정확하게 컨트롤하여 발효과정을 좀더 일관되게 관리하고 있다.
텝의 말대로, 현대의 와인 메이킹은, 특별히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방법과 노하우로 와인을 만들되, 최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그 과정에서 최고의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이렇듯 하이텍을 접목시킨 와인 메이킹은 확실히 효과적인 것 같다. 클로 라샹스는 지난 10월 ‘푸드 앤 와인’ 매거진으로부터 ‘주목할 10대 와이너리’로 선정되었고,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메달과 상을 탄 바 있다.
나파밸리에 위치한 케익브레드(Cakebread) 와이너리의 브루스 케익브레드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변화들을 가시건과 적외선으로 측정하고 있다.
비행기를 사용해서 하루 중 다른 시각과 연중 다른 계절의 사진을 찍은 후 이를 포도나무와 포도 열매의 건강상태와 비교하고, 그 결과에 따라 포도를 언제 수확할 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좀더 좋은 상태의 포도를 매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와인의 품질에 일관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의 미각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자료를 분석하여 포도를 수확하기로 결정하였다 하더라도 우선 포도의 익은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맛을 본 후에 마지막 결정을 하게 된다. 케익브레드에 의하면 수확기에 이르러서는 매일 약 10파운드에 달하는 포도의 맛을 보고 수확을 결정하고 있다.
과학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는 언제 포도밭에 어느 정도 양의 물을 주어야 하는가이다. 로버트 몬다비는 UC 버클리 대학과 협력하여 레이다를 장치하고 흙 속 수분의 함량을 측정한 지도를 만드는 일을 실험적으로 하고 있다. 진공청소기 정도 크기의 기계로 전자파를 쏘아서 지상과 지하의 수분 함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몬다비와 UC 버클리는 이제 그 다음 단계로 이러한 자료가 포도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많이 알게되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많이 알고 좀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와인 메이커들이 쏟아붓는 노력과 투자는 끝이 없는 듯 하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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