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태어날 때 각자가 독특한 DNA를 받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긴 성장기에 여러가지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가정에서 부모의 가르침, 학교 교육, 자연 환경, 사회 환경, 사귀는 친구…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친구의 영향이란 과연 얼마 만큼의 크기일까.
한국에는 친구에 관련있는 속담들이 여럿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 ‘가재는 게 편이요, 초록은 한 색깔이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 등이다. 어떤 것은 친구의 귀중함을 말하고, 어떤 것은 친구 사귈 때 조심하라고 이르고 있다. 그렇다고 친구 없이 지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홈 스쿨링이라고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교육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서 자란 학생들의 학과 성적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들의 사회성은 어떻게 성장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사의 영향도 받지만 친구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그들은 친구들과 사귀는 동안에 사회생할의 기초인 인간관계를 익히게 된다.
어느 날, 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린이들은 누구 하고 놀아요?’ 그들은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였다. 그러다가 어떤 어린이가 ‘강아지 하고 놀아요’라고 말하자 고양이, 토끼, 물고기, 거북이, 흰 쥐… 등 애완동물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때 마이클이 ‘텔레비전 하고 놀아요’ 라고 소리쳤다. 이어서 ‘내 친구는 DVD에요’라고 누군가가 말하였다. ‘DVD가 친구라고?’ 교사의 되물음이 있자 여기 저기서 ‘나도 DVD 하고 놀아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DVD가 뭐야?’ 하고 묻지 않았다.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그럼 누구하고, 무엇하고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어요?’ 교사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대답은 제각기 달랐다. DVD가 좋다는 어린 학생은 보고싶은 것을 자꾸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였다. 그는 같은 동네에 친구가 없다고 말하였다. 집 밖에만 나서면 친구들이 있어서 어두워질 때까지 뛰어놀던 시절에 자란 어른들과는 사정이 다른 미국의 현실이다.
‘아니 친구하고 놀려고 찾아갈 때도 어포인트먼트를 해야 되고, 친구를 데려올 때도 그 부모에게 몇 시까지 놀겠다고 승낙을 받아야 하니 우리들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지요’라던 어떤 분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친구가 귀해서 어쩔 수 없이 첨단 기계를 벗삼는 어린이들에게 우정은 어떻게 싹트는 것일까. 친구 사이에 싹트는 따뜻한 우정은, 남녀 사이의 연정 같은 감미로움과는 다른 깊이가 있다. 마치 물 맛과 소프트 드링크 맛과의 비교와도 같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우정의 영향은 성장기의 중요한 요소이다. 때로는 부모의 간곡한 설득이나, 교사의 애정있는 의견 보다도 친구의 한 마디가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체험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어른들이 자녀의 교우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반대로 자녀가 사귀는 친구들을 보고 자녀나 학생의 마음이 흐르는 방향을 짐작하게 된다. 그들은 끼리 끼리 모이
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 어린이의 마음이 예쁘게 느껴진 때가 있었다. 친구를 사귈 때 조심하라는 말에 ‘그럼 나쁜 친구는 누구하고 놀아요?’라고 물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어린이가 있었다.
이 지역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한국 내에서 자라는 것 보다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점을 헤아릴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친구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와도 같이 놀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그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갖기 쉬운 선입관이나 그릇된 민족에 따르는 차별같은 것에서 벗어날 것이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같은 또래의 친구를 만나기 어려워 그것을 벗삼아 시간을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친구’는 인간사회를 연결하는 사랑의 고리이고 자녀를 폭넓게 성장시키는 영양소이기 때문이다. 어디 성장기에만 친구가 필요한가. 친구의 도움은 생애를 채워주는 각자의 재산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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