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춘기(골동품 복원가)
공자나 맹자의 말도 아니고 그저 옛 어르신네의 말씀으로만 기억된다. “대장부가 세상을 살아 가는데는 3뿌리를 조심하여야 하느니라. 첫째 입뿌리, 둘째 총뿌리, 셋째 발뿌리” 단순하면서 거칠고 그러면서 무릎을 탁 내리치게 하는 이 세뿌리 넋두리야 말로 만고의 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겨오다 기어이 탄핵이라는 벼락을 자초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뿌리! 백악관 르윈스키 스캔들을 야기시켜 역시 탄핵이라는 뜨거운 맛을 보고야 고개를 숙인 사나이 가운데 남자 클린턴대통령의 총뿌리! 아직까지는 진행중이라 하나 이라크라는 수렁에 잘못 걸어들어가 곤욕을 치루고 있는 부시대통령의 발뿌리! 성서를 인용한 것도 아니요 경전 구절에서 뽑아낸 것도 아니요, 위대한 성인의 말을 빌린 것도 아니다.
노인들이 사랑방에서! 동네 주막에서! 아니면 논두렁이나 원두막에 앉아 멀리 신작로 길을 걸어가는 독쟁기 신사를 빗대어 한 말에 지나지 않다. 어떻게 들으면 웃기는 풍자로밖에 들리지 않는 3뿌리 넋두리 속에 이렇게도 심오한 인생철학이 담겨져 있을 줄이야, 나는 다시 한 번 세차게 무릎을 친다.선거철이 되면 입뿌리들이 난무한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초반에 카터 전 대통령, 고어 전 부통령의 지지선언을 받는 등 단연 선두주자로 달리던 딘 후보가 단 한번의 경솔한
행동과 입뿌리로 인해 곤두박질쳐 도중 하차하고 만 일! “선거날, 노인은 낮잠이나 자라”고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몰매타작을 당한 정동영(열린우리당의장)의 입뿌리! 이 모두가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3뿌리의 인생철학의 심오함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발뿌리에 얽힌 슬픈 역사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를 끌어들여 라당연합군을 형성하는데 성공
한 신라왕 김춘추(태종무열왕)는 매부인 김유신으로 하여금 라당연합군 선봉장으로 삼아 출전시킨다. 출전 전야 처남이요, 왕인 김춘추가 베푼 출전 축하주에 취한 상태에서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장군 김유신은 말이 가는대로 몸을 맡긴채 마상에서 졸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식한 장군은 눈을 떴다. 그곳은 장군의 집이 아니라 애첩 매형의 집이 아닌가!장군 김유신은 마상에 그대로 앉은 채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얼마! 장군은 말에서 뛰어내려 장군도를 뽑아 단칼에 말의 목을 쳐 베어버린다.
“이 괘씸한 놈, 방금 왕으로부터 어주를 하사받고 내일이면 라당연합군 선봉장으로 싸움터에 나갈 장군인 나를 첩의 집으로 데려오다니 이놈” --- 왕에 대한 불경! 장군으로서의 체통, 집에서 기다릴 정경부인에 대한 죄책감,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애첩이 아니라 애마의 목을 쳤겠지. 그런데 말이 왜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으며 나아가 말의 죽음에 대해 무한한 분노를 느낀다.
‘말’은 승마인의 발뿌리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선다. 왼쪽으로 가라면 왼편으로 가고 뛰라면 뛴다. 장군의 애마는 평소 주인이 자주 오던 애첩 매향의 집을 잘 안다. 술에 취한 장군이 마상에서 졸면 자기가 알아서 매향의 집에 모셔온 일이 열두번도 넘으며 그 때마다 장군은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 않았던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장군은 알고 있다. 그런데 말이 목을 바쳐야 했다.
나는 생각한다. 장군 김유신은 애마의 목을 치기 전에 그 칼로 자신의 발뿌리를 찍어야 했다. 잘못 찾아들어간 발길, 그 발등을 찍고 싶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식으로 말이다.
3뿌리의 행동거지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어느 누구에게도 전가시킬 수 없다. 전적으로 그리고 결단코 자신의 책임 하에 있다. 때문에 3뿌리는 자신의 전인격을 담보로 한 철저한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 통제력을 상실한 3뿌리는 엄청난 재앙을 본인은 물론 이웃과 사회에 가져다 준다. 때문에 그런 뿌리는 붙들어 매든가 아니면 아예 잘라버려야 할 것이다.
크고 작은 봇짐을 짊어지고 태평양을 건너온 우리들 이민자들은 다같이 숙명적으로 역마살을 타고난 공동의 운명체라 할 수 있다. 이 공동의 운명체를 탈없이 슬기롭게 유지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데는 각자의 3뿌리를 각자의 책임 하에 정의롭게 가꿔나가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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