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김재범<문학박사>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한국 영화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개봉관에서 동시 상영된다고 한다. 이 영화는 색욕(色慾)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인간의 욕망이 낳는 삶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되풀이되는 인간의 욕망과 생사 윤회라는 불교적 소재를 영상화하고 있다. 마치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영화가 얼마나 작품성이 있는지 영화의 메시지가 얼마나 관객들에게 공감을 줄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초래하는 업(業)이 어떻게 우리 삶을 윤회(輪廻)라는 고리에 얽어매는가 하는 문제가 새삼 무겁게 다가와 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영화는 사계절의 비유를 통해 소년기와 청년기, 장년기, 그리고 또 새 봄과 새로운 소년을 등장시켜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한 인간은 일생의 성장과정을 통해 욕망의 분출과 극복과정을 경험하는 듯하나, 인간세계 전체의 욕망은 사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이 바뀌어 돌고 돌듯이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욕망도 똑같이 새롭게 움튼다. 인간세계 전체의 공업(共業: 사람들이 함께 짓는 업)의 생사윤회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대목은 바로 그 부분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설사 알더라도 그 욕망이 너무 강해 주체를 못하고 욕망에 끌려가고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알면서도 했던 짓을 또 하고 또 하며 후회와 다짐을 되풀이한다. 그것이 윤회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만이 윤회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욕망에 끄달려 짐승같은 생각을 하면 그 순간 축생계에 사는 것이고, 남을 해하려고 하는 욕망을 지니면 그 순간 지옥에 사는 것이다. 우리는 죽기 전에도 욕망에 따라 한평생을 그렇게 윤회하며 사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식욕(食慾), 색욕(色慾), 수면욕(睡眠慾),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등 인간의 다섯 가지 욕망을 오욕(五慾)이라고 한다. 모든 욕망은 양면성을 가지며 또한 다른 욕망을 낳기도 한다. 예컨대 색욕은 생명을 잉태하게도 하지만, 그것이 바라는 대로 충족되지 못하면 영화에서와 같이 소유욕과 지배욕, 질투심을 낳아 살생을 부르기도 한다. 욕망은 인간의 삶이 유지되게 하는 원동력이면서도 끊임없는 생사윤회의 고통에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누구나 후회할 짓 - 허튼 소리와 거짓말, 남을 헐뜯는 말에서부터 도둑질이나 살생에 이르기까지 - 은 다시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즉 윤회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같은 짓을 습관적으로 되풀이한다. 그렇게 윤회하는 이유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며, 욕망의 바탕에는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자리하고 있다. 탐진치(貪瞋痴), 즉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불교에서는 세 가지 독과 같은 마음(三毒心)이라고 한다. 탐욕이 충족되지 못하면 화내고 분노한다. 탐욕과 분노의 원인은 어리석음이라는 근본무명(根本無明), 무지(無智) 때문이다. 결국 욕망에 끄달려 악업(惡業)을 짓지 않고, 윤회를 벗어나는 길은 이러한 삼독심을 버리는 것이다. 삼독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탐욕과 분노가 일어나는 자리를 지혜롭게 살펴, 탐욕과 분노의 불길을 꺼야한다. 불길을 끄는 가장 좋은 방법이 참선명상수행이며, 탐욕과 분노의 불길이 꺼진 상태를 열반(涅槃),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벗어난 것을 해탈(解脫)이라고 한다. 깨달음은 열반과 해탈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런 깨달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 부처이고, 부처의 가르침이 불교이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하고 생사의 윤회를 말하지만, 불교의 핵심은 고통이나 생사윤회가 아니라,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해탈이라는 깨달음의 세계, 극락(極樂) 세계의 삶이다. 지극한 즐거움의 세계인 극락은 죽어서 가는 별세계가 아니라, 이 생에서 이루어야 할 생의 최대 목표이자, 삶의 궁극적 의미이다. 그러므로 극락왕생(極樂往生)의 발원은 죽어서 극락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기 보다는 탐진치로 인하여 윤회하는 고통의 삶을 다시는 살지 말라는 간절한 희구이다. 극락은 날마다 좋은 날이 이어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라는 인사말은 봄여름가을겨울 언제 어디서나 탐진치로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윤회하지 말고, 지혜로운 깨달음으로 지극히 즐겁게 살아가라는 최고의 기원이 담긴 인사말이다. 모두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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