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한 번에 토끼 두 마리를 잡아도 대견할 텐데, 열 마리를 잡은 공연이 있었다. 그것은 청소년 연극 ‘우리 읍네’를 가리킨다. 이 연극은 손튼 와일더(Thornton Wilder)의 희곡이며, 그는 미국의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 생활을 그려서 퓰리처상을 탔다.
와일더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매일 되풀이하는 생활 중 하찮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일에서 소재를 구해 영원한 시간과 장소를 연결시킴으로써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가치를 찾는 것이었다.
연출가 김은희씨는 우선 희곡 선정에 성공하였다. 출연자와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대사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연자를 공개 모집한 결과 좋은 인재를 구해서 배역에 무리가 없었다. 그들이 무섭게 정열적으로 연습을 거듭한 결과는 세련된 대사와 제스처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연극은 무대 장치가 거의 없다. 이웃한 두 가정은 색깔이 다른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이고, 그 집들의 이층은 두 개의 사닥다리일 뿐이다. 무대 장치는 간략할수록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런 뜻에서 연극의 효과는 더 컸다.
출연자의 의상도 단순하지만 상징성이 있었고, 조명과 배음에서도 세심한 마음씨가 엿보였다.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진 절제된 표현으로 깔끔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주최측과 참가자들의 노력을 알게 했다.
그렇다면 이 청소년 연극이 열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활동 방향을 제시한 점이다. 때로는 그들의 성장 과정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의의 눈길로 그들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방향 제시를 하는 것은 어른들의 역할이다.
특히 출연자들에게는 커다란 혜택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의사 결정으로 출연 희망자 오디션에 응하는 체험을 했다. 각자가 맡은 배역과 희곡 전체와의 관계를 이해해야 했다.
연습 중에는 하모니를 중요시하면서 맡은 파트를 익혔다. 배역에 따라 대사와 제스처를 연구하였다. 연극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였다.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공연하면서 제각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등등 그들이 누린 체험은 지난 몇 달 사이에 각 방면으로 눈부신 성장을 가져온 것이다. 그것도 즐기면서.
이번 공연의 관객은 대부분이 청소년들이었다. 친구들의 공연을 감상한다는 기쁨은 대단한 것에 틀림이 없다. 그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친구들의 활동을 지켜 보았을까. 나도 다음 기회에는 참가하고 싶다.
연습을 하면 저렇게 잘 할 수 있구나. 친구로 볼 때와 무대 위의 그는 다르네. 나 같으면 저 부분을 좀 더 멋있게 표현했을 텐데. 연극이란 이렇게 재미있구나. 나도 재미있는 희곡을 쓰고 싶다. 배우가 되고 싶다… 등등 많은 생각이 오고 갔을 것이다.
어른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청소년들의 공연 모습은 청순하고 아름답다. 연극은 청소년이 정열을 발산할 수 있는 종합적인 좋은 활동임을 보여준다. 여유가 있다면 이런 일에 도움을 주고 싶다. 청소년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좀 더 청소년의 성장을 진지하게 살피고, 도와야 한다… 등등 만감이 오갔을 것이다.또한 여기서 ‘죽음’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았다. 네살 된 어린이가 죽음이란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연극에서 에밀리의 영혼이 집에 다시 돌아갔을 때 부모와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죽음’이란 영혼과 산 사람과의 대화가 멈춰버린 상태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번 공연 ‘우리 읍내’는 지역사회에 떨어뜨린 하나의 깨끗한 물방울이다. 이 물방울은 물결을 넓게 퍼지게 하는 자극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틀림없이 그런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 읍내’ 공연장이었던 맨하탄의 ‘Poet’s Den’이 포터블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늑하고 예쁘게 꾸며진 안락한 소극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이 극장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공연하고 싶은 자리에 펼쳐놓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지역사회도 하루 하루 성숙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의 희망이 무르익어가고 있음을 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