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토스 황봉오. 헬렌 부부집 정원 연못에 가보니...
예로부터 잉어는 힘과 생명, 부와 출세의 상징이다. 용왕의 아들인 잉어를 구해주고 보은을 받았다는 신이담을 비롯해 잉어가 황하 상류의 거센 물길을 오르면 용이 된다는 중국 고사 ‘등용문’까지 잉어와 관련된 고사는 많다. 또한, 잉어 꿈은 수태나 횡재를 알리는 길몽이라 한다. 그만큼 귀한 물고기로 대우받는 잉어 중에서도 빛깔·무늬·광택 등이 우수한 형질을 선발해 육성한 관상용 품종이 ‘비단잉어’(Koi)로, 수조에서 기르는 금붕어, 열대어와 달리 연못에 어울리는 물고기다. 식물원 수족관, 고궁의 연못에서나 볼 수 있던 비단잉어를 7년이 넘게 자기 집 정원 연못에서 기르는 한인가정이 있다. 세리토스에 사는 황봉오(50)·헬렌(48)씨가 그 주인공. 집게손가락 만한 크기의 새끼잉어를 사다가 팔뚝만한 크기의 비단잉어로 기른 황씨네 정원 연못을 공개한다. <글 하은선 기자·사진 김영수 기자>
물 관리만 잘해주면 비단잉어만큼 기르기 쉽고 재미있는 물고기도 없죠.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다르고 화려한 모양새를 지녔잖아요. 빨갛고 하얀 색깔도 예쁘지만, 황금빛 찬란한 모습으로 무리 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아무리 갈 길이 바쁜 사람이라도 황씨네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의 평정이 찾아와 시조 한 수 읊고 싶은 여유가 생긴다. 연못 옆에 일부러 만들어놓은 평상에 앉아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피고, 군고구마, 구운 옥수수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면 경복궁 경희루가 부럽지 않다.
인공폭포가 설치돼 있는 황씨네 연못에는 20마리의 비단잉어들이 살고 있다. 비단잉어가 ‘수영의 왕자’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호쾌하게 헤엄치는 몸짓은 정말 볼거리. 비단잉어는 금붕어와 달리 크고 뚱뚱해서 징그럽다 싶어도, 사람과 금방 친숙해지는 ‘귀여운’ 물고기이다.
게다가 화려한 몸체에 비해 얼굴 생김새는 ‘수더분’하다. 비단잉어의 얼굴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끊임없이 연못 위로 고개를 내밀고 두 눈을 끔뻑거리며 뭔가를 말하는 수다쟁이 인상을 받는다.
황씨네 연못은 장방형으로 아담하다. 3,000갤런이 들어가는 물탱크가 있어 연못물 순환이 24시간 계속된다. 집게손가락 만한 새끼잉어를 넣었을 때는 운동장을 방불케 했던 연못이 이젠 비좁아졌지만, 비단잉어는 싸움을 하지 않는 물고기인지라 연못 속에 새로운 잉어를 넣더라도 연못 속의 다른 비단잉어들이 환영이라도 하듯이 무리 지어 반긴다.
손님맞이를 위해 아침 내내 굶었다는 황씨의 비단잉어들에게 먹이를 물위에 뿌려주니 순식간에 없어졌다. 먹이를 먹을 때도 결코 다투는 일없이 모두 즐겁게 먹어치우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중에서도 빨리, 많이 먹이를 먹는 비단잉어가 있긴 해도 서로 물어뜯어 가며 먹이 쟁탈전을 벌이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한다. 행여 먹이가 모자라면 연못에 끼인 이끼나 연꽃잎을 뜯어먹고 말뿐이라니 비단잉어의 품성을 짐작할 만하다.
황씨의 연못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비단잉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황금색 잉어는 별명이 ‘돼지’다. 물론 가장 뚱뚱해서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뚱뚱한 체격을 유지하자니 먹기도 제일 많이 먹고 움직이기도 가장 많이 움직인다. 한번 왔다갔다할 때마다 연못물은 몸살을 앓는 듯 일렁이지만, 돼지 잉어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올라 인사라도 하듯 입을 벌려주는 걸 잊지 않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놀라운 사실은 새끼잉어일 때는 4∼6달러에 구입할 수 있지만 황씨의 ‘돼지’ 잉어 정도로 풍채가 볼만해지면 한 마리 2,000달러가 넘는다는 것. 연못 만드는데 1,500달러가 소요됐고 스무 마리를 키우는데 한 달에 27달러(밥값 7달러, 전기료 20달러)가량이 든다니 비즈니스 마인드로 생각하면 남아도 무지하게 많이 남는 장사다.
<연못 만들기>
정원 손질, 집수리 등 틈만 나면 망치 들고 뚝딱거리는 남편 황씨와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아내 헬렌씨가 비단잉어를 한번 길러 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7년여 전,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의 성화에 연못 만들기 작업이 시작됐다.
제일 먼저 연못 설치장소가 문제였다. 봄이면 꽃이 만발하는 뒤뜰 정원 한 가운데 만들 수도 있었지만 좁은 감이 있어 정원으로 향하는 긴 통로, 자투리땅을 연못 설치장소로 삼았다. 볕은 잘 들면서도 적당한 높이의 담으로 인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어 연못 자리로는 최고였다.
황씨가 혼자서 책을 뒤져가며 연구해 급수 입구와 배수구 등 연못 양식을 정했고, 온 가족을 일꾼 삼아 한 달만에 연못을 완성했다. 한창 무렵에는 아들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도 연못에 돌멩이 나르는 일에 합세해야 했다.
비단잉어를 기르기 좋은 연못은 비교적 간단하고 비용도 저렴한 콘크리트 연못. 그러나, 새로 만든 콘크리트 연못은 잉어를 넣기 전, 한 달 정도 물을 갈아주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시멘트의 독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연못 구조상 제일 유의해야 하는 것은 연못의 깊이. 너무 얕으면 햇볕에 물이 뜨거워지므로 수온이 올라가 비단잉어들에게 쾌적한 수질환경 제공이 힘들고, 새나 고양이가 비단잉어를 낚아 채갈 위험이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처럼 따뜻한 지역은 상관없지만, 연못이 너무 깊으면 추운 겨울 동상이 걸리기 쉬워 비단잉어 사육에 부적합하다. 작은 연못의 경우 1미터(최소한 3피트)정도의 깊이가 적당하다고 한다.
황씨의 연못에는 비단잉어들이 숨을 수 있도록 벽돌 몇 개가 놓여져 있다. 낯선 소음 따위에 놀라면 숨을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 시간이 지나면서 벽돌 전체가 이끼로 뒤덮여 은신처가 된 동시에 먹이까지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황씨네 연못에 소요된 비용은 1,500달러. 전문가에게 의뢰했다면 족히 10배도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라고 황씨 부부는 밝혔다.
<비단잉어 특성>
비단잉어는 건강한 체질이라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 누구라도 간단히 사육할 수 있다. 여행 등으로 1주일 정도 집을 비울 때 먹이를 주지 않더라도 끄떡없을 정도로 건강하고 먹이를 주러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몰려들 정도로 사람과 쉽게 친숙해지는 애완물고기로는 최고다.
먹이도 비단잉어 전용 인공먹이를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따뜻한 봄철이 되면 하루 1∼2회 정도 먹이를 주는 게 좋다.
잉어 수명은 보통 20년 정도이지만 잘 기르면 100년을 넘게 사는 경우도 많다. 좋은 먹이를 충분히 주고 잉어의 생육에 적당한 환경을 갖추어주면 질병의 발생이 드물기 때문. 그러나, 잡어와 함께 기르는 건 금물이다. 좋은 잉어만을 골라 기르는 것이 잘 기를 수 있는 비결인데, 건강한 비단잉어라도 한 마리가 병이 들면 순식간에 떼죽음을 초래한다.
황씨 부부는 처음에 20마리를 키우다가 자신감이 붙어 다시 새끼잉어 10마리를 보충한 적이 있는데, 얼마가지 않아 10마리 가량이 살이 흐물거리며 죽어 가는 바람에 살균제를 넣고 소독하는 등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새로 구입한 비단잉어들에게 세균성 질병 보균자가 있었던 것. 황씨 부부는 잉어를 보충할 경우 연못에 바로 넣지 말고 일정기간 격리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매거진 ‘코이 유에스에이(Koi USA)에 따르면 미국에만도 비단잉어를 취미 삼아 기르는 인구는 상당수. 금붕어 두 마리가 왔다갔다하는 조그만 어항 선물에 감지덕지하던 시절과 달리 이젠 집 정원에 비단잉어 연못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미 전역에 비단잉어 애호가들의 모임인 ‘코이 클럽’이 형성돼 있고, 매월 ‘코이 쇼’(Koi Show)가 곳곳에서 수 차례 개최된다. 4월부터는 비단잉어 애호가들이 자신의 연못을 공개하는 오픈하우스 ‘폰드 투어’(Pond Tour)가 실시돼 애호가들끼리 정보교환의 장을 제공한다.
탐 크루즈, 파멜라 앤더슨, 스티븐 스필버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 할리웃 스타들의 저택에 비단잉어 연못을 조성해준 ‘피시 레이디’ 바바라 존슨에 따르면 녹음이 우거진 정원이 바라다 보이는 젠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은 삶의 평화와, 안정, 균형을 주는 명상의 장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혈압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어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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