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작가 주 평
2월의 꽃샘바람과 짓궂게 내리던 비가 멈췄다. 샌프란시스코의 봄은 태평양 바닷바람으로 온다더니, 가로수 길에 벌써 벚꽃이 활짝 피었다.
3월! 화신(花信)을 기다리는 달이다. 나는 오늘도 막연한 기대감으로 혹시나 누군가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나 하고 전화통과 우체통을 습관처럼 바라보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컴퓨터의 E-mail이 우리 삶의 통신수단이 되어버린 이런 시대에 전화통에 매달리고 글로 씌여진 편지를 기다린다는 사실 자체가 어쩜 낙후된 삶을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버려야 할 습성일지 모른다.
옛날 우리는 미생물인 까치소리마저도 반가운 소리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60년 때에는 어쩌다 전화 한 대라도 가설하는 행운이 주어지면 이 전화통을 통하여 들려오는 까치소리(희소식)에 살 맛을 느끼고 산 적이 있지 않았던가.
컴퓨터를 두 달만 배우면 컴맹을 면할 수 있는데 나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 대신 속필(速筆)인 덕분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지 않고 펜(pen)으로 원고지 사천장을 썼다. 누가 들어도 무지막지하고 시대착오적인 문필수단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컴퓨터에 대한 거부반응을 지니고 있음은 나이 탓만이 아니다. 문명의 이기(利器)라는 컴퓨터가 어린이들의 정서심을 앗아갈 뿐 아니라 일부이기는 하지만 성인들의 건전한 생활패턴을 망가뜨리는 흉기(凶器)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한편으로는 키보드를 눌려서 쓴 글 자체에 작가적인 혼이 깃들지 않다는 내 나름의 생각 때문에서이다. 그리고 이 메일에 의한 편지 왕래 또한 정감이 배제된 나눔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 나름의 전화소통과 편지 쓰기로 인해 내가 상처 입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콩쥐팥쥐의 해외공연 관계말고도 일본이든 한국이든 뉴욕이든 LA이든 전화하고 싶은 대상이 생각나면 그 즉시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그런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 반가움의 대상(친구)가 시세말로 출세했다던가 엄청난 부(富)를 누리고 살고 있을 경우 십중팔구가 전화소통 시스템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쪽으로 하여금 이 숫자 저 숫자를 누르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그 쪽의 지시대로 어설프게 이 키 저 키를 누르다 보면, 어느 곁에 뚜욱하고 전화가 끊기고 만다. 그래서 내 쪽에서 빌어먹을 이란 곱잖은 소리가 튀어나오게 된다. 또 다른 예로는 땀땀이 후배 문인들이 보내오는 책을 받으면 나는 꼭 그 책을 읽는다. 그리고는 읽은 소감(특히 좋은 점)을 전화로 알려준다. 그런데 저쪽에서 그다지 반가와 하지 않을 때나, 전화 도중 선생님 미안해요, 한국에서 국제전화가 걸려 왔어요. 나중에 전화 할께요!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순진(?)하고 속 없는 늙은 것이 전화 걸려오기를 기다리지만 끝내 전화가 오지 않을 때는 쓴 입맛을 다시고 만다.
한편 기증본을 보내오면서 책갈피 속에 편지 한 장쯤 끼워 보내면 더욱 정감이 가겠건만, 달랑 책만 보낼 때는 너무도 사무적인 것 같아서 보내준 책이 별로 반갑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독후감을 내 육필(肉筆)로 적어 보냈는데도 반응이 없을 때, 나는 또 한번 실망한다. 내가 실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집사람은 나이를 먹었으면 저 쪽에서 전화 걸려 오던지, 편지를 보내줄 때까지 기다리지 왜 체신머리 없이 당신 쪽에서 전화 걸고 또 편지를 보내는 거요?라고 핀잔을 준다.
지난날 이름 있는 작가나 예술가들의 서간문(書簡文)이 후 일에 그 문학적 가치에 대해 논의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서라도 적어도 글 쓰는 문인들만이라도 컴퓨터란 기계가 풀어내는 이메일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친필로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을 멀리 하지 말자는 나의 바람이 케케묵은 생각일까?
1월 달 이 수필산책 란에 실었던 경주로 띄운 편지에 대해 답장이 왔느냐고 Y시인이 전화로 물어왔다. 하지만 수취인 불명으로 편지 띄운 지 두 달만에 반송되어 왔다. 그런데도 나는 내 습성을 버리지 못해 오늘 또 지난 2001년 콩쥐팥쥐 오사카 공연 때 특별히 신세진 한 일본인과 부산에 사는 문우(文友)에게 편지를 보낸다.
컴퓨터 시대에 원고지 칸을 메우고 이메일 아닌 편지지에다 사연을 적어보내고 그리고 60년대처럼 전화통에 매달려 사는 나의 생활태도가 어쩜 내 스스로를 E-mail.시대의 낙오자로 만드는 소치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살고, 글을 쓰는 습성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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