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렬(건축가)
“산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에서 오네… ”
남쪽 끝 어디에서 또 봄바람이 봄을 실어오고 있다. 멈칫 멈칫 오는 봄, 변덕이 심한 봄, 옷을 벗겼다간 떨게 하고 다시 옷을 찾아 입게도 한다. 봄은 뜸을 들이고 애태우며 내줄 듯 말듯 그렇게 멈칫 멈칫 온다.
마치 만삭의 임산부에게 새생명의 우렁찬 첫 울음소리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깨우쳐주듯 나올 듯 말듯 맘 졸이게 하며 즐거운 진통을 주면서 그렇게 천천히 온다. 봄은, 이겨내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주며 온다. 그래도 아기는 태어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기에 임산부는 그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희망의 봄, 부활의 봄, 찬란한
2004년의 봄이 도 오고 있다. 내 쉰 아홉번째의 봄이…
맨하탄의 봄은 뉴욕의 허파, 센트럴 팍의 바람 냄새에 섞여오는 말똥 냄새와 함께 온다. 플라자호텔 앞에 차를 세운다. 봄 채비를 하며 성수기를 기대하는 마부들의 생기있는 미소를 싣고 연인들을 태운 관광마차의 방울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다. 문명 속에서 원시의 냄새가 향수를 데리고 온다.
여물통에 머리를 박고 여물을 먹고 있는 말의 굽은 곡선을 보며 정현종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풀뜯고 있는 소들/풀뜯고 있는 말들의/그 굽은 곡선!/생명의 모습/그 곡선/평화의 노다지/그 곡선/왜 그렇게 좋은가/그 굽은 곡선>을 읊으며 평화를 생각한다. 자유를 생각한다.
비록, 초원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고 마음껏 광야를 달릴 순 없지만 그 모습은 우리네 인간들 보단 평화로워 보인다. 짐승이나 인간이나 제각기 타고난 자리와 지고 갈 짐이 있다는 걸 생각한다. 9.11 테러 이전의 넘치던 미국의 자유를 그리워한다.
스페인에서 폭탄테러, 북핵문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가결로 혼란스런 한국..., 진정한 평화는 利他와 평등과 신뢰로 더불어 살아갈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차를 주차시키고 센트럴 팍으로 들어선다.햇빛이 흐르고 바람이 흐른다. 봄비 내려 물먹은 대지를 걷는다. 길가의 나무들도 내린 비를 흠뻑 마시고 새 순을 틔우느라 분주하다. 온 땅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 한바탕 웃어제칠 잔치준비들로 부산하다.
3월의 봄볕이 봄비와 봄눈, 낙엽과 흙을 비벼 초목들의 양식을 만드는 소리를 듣는다. 장난기 가득한 초목들이 윙크하고 곁눈질 한다. 지렁이와 벌레들이 죽은 채 익살을 떤다. 나무들이 웃는다.
복숭아 나무 붉은 새 순에서 붉게 달아오르는 사랑을 본다. 산뜻하고 매운 바람에서 생기와 열정을 느낀다. 개울물이 자갈에게 모난 것을 버리라고 권면하는 소리를 들으며 뉴욕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라는 ‘보우 브릿지’를 혼자서 걷는다. ‘보트하우스’ 테라스에 앉아 뜨거운 커피잔을 든다. 한 쌍의 연인을 실은 보트가 3월의 하늘을 마음껏 담은 호수 위를 노닌다.
배 젓는 사공의 휘파람 소리마저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한 3월의 정오.보도블럭 위에 떨어진 솔방울 하나를 주워들고 울만 아이스링크 벤치에 앉는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거야”란 에릭 시걸의 소설,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들을 생각한다.
내 청춘의 오래된 청바지 뒷주머니에 간직했던 추억들을 꺼내 본다. 소음과 혼란 속에서 혼자될 여유가 남아날 수 조차 없는 일상, 숲 사이로 비치는 햇볕띠에 방금 낚아올린 ‘무지개 숭어’의 번뜩이는 잔등처럼 싱싱했던 젊은날의 고독, 그 찬란한 고독을 잃었다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싱싱한 고독 한 조각을 되찾고 싶어 예까지 왔지 않은가. 아름다운 시달림에 지쳐보고 싶건만 날이 갈수록 황량한 사막처럼 허허로워지는 내 바스락거리는 가슴 한 복판에 누가 다시 불을 지펴주랴.
세상은 한쪽으로 무너지고 다른 한쪽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밑가지가 되기 위함’이라는 사실, 돋아나는 새 가지를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한다. “내 아버지는 농부시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들은 가지라”(요”15)
나무는 결코 굵고 강한 가지가 윗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새로 나온 가지가 언제나 윗자리에 자리잡는다. 세상적 사고방식으로는 가장 크고 강한 가지가 가장 윗자리를 차지해야 하건만 나무는 가장 먼저 돋아난 첫번째 가진 그 가지를 의지하고 새로운 가지들이 자라남을 거듭한다.
나무가 세월이 가도,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생명의 그늘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크고 강한 가지가 버텨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나무는 꺾어질 수 밖에 없고 죽을 수 밖에 없다.
세상사에서도 가장 오래 되고 무거운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밑가지가 되는 사회, 배운 사람, 성공한 사람일수록 밑가지가 되는 사회가 건강하고 희망있는 좋은 사회라고 나무가 말해준다.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지 않으며 서로가 밑가지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을 때 그 사회는 ‘평화의 노다지’가 쏟아져 내리는 복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가정에서 일터에서 신뢰받는 밑가지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끔 내 삶을 가다듬어 가리라. 그것을 간구하며 고난주간을 보내리라.공원을 나온다. 모든 걸 이겨내고 새롭게 태어나라. 나의 조국이여! 찬란한 부활의 봄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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