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손님
사우나 이용권을 선물 받았다며 같이 가자는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사우나에 다녀왔다. 사우나에 즐겨 가는 타입은 아니지만 가끔은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가서 땀을 빼고 오곤 한다.
한인타운에서 가장 좋다는 사우나는 과연 쾌적하고 고급스러웠다. 우리는 80달러짜리 ‘때마사지’를 신청하고 누웠는데 때를 밀던 아줌마가 나를 보고 어떤 마사지를 받겠느냐 묻는다. 갑자기 의아하여서 마사지에도 종류가 있는가고 물었더니,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였다.
레귤러가 80달러고, 중간급이 110달러, 최고급은 130달러인데 최고급은 비타민 C가 들어가고, 쓰는 기름이 훨씬 좋다며 채근을 넘어서 압력을 넣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진 선물권은 80달러짜리 였으므로 갑자기 당황스러워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냥 레귤러로 하잔다.
“레귤러 할래요”했더니 때 미는 아줌마는 “에이, 중간거라도 하지” 하면서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부터 마사지가 끝날 때까지 나는 싸구려 취급을 받는 듯 해 기분이 계속 불편하고 찝찝했으며 다시는 이 집에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노동량은 똑같이 제공되는데 사용하는 원료나 재료에 따라 가격차이가 크게 날 때, 서비스가 달라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유난히 한인 업소에서만 느껴지는 서비스의 감정적 차이다.
남편이 가끔 양복을 해 입는 양복점은 서너가지로 수준을 정해놓고 있다. 그 수준은 다른게 아니라 옷감의 차이인데, 값이 싼 레벨의 옷감 중에서 고를 때면 양복집 주인이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옷감 고르는 일조차 도와주지 않는 경우를 여러번 당했다. 양복 만드는 공전은 똑같은데 좋은 옷감을 고르면 몇백달러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몇 년전 결혼한 한 친지는 사진관에서 그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결혼사진은 패키지가 여러 종류이고 가격차이가 매우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진사가 찍는 양이 다른 것은 아니다. 결혼식에서 기본적으로 찍는 장면들은 모두 같은데, 패키지의 가격차이란 똑같은 필름에서 얼마나 더 많이, 얼마나 더 크게 뽑아서, 얼마나 더 호화스럽게 앨범을 꾸미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당연히 가장 싼 패키지를 택한 신랑신부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 뻔하다.
상품의 가격 차이가 불과 몇 달러밖에 안 되는 식당에서도 그런 일을 종종 당한다.
냉면을 잘 한다는 한인타운의 한 식당은 냉면을 시킬 때마다 꼭 “갈비는 안 하세요?”를 묻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발걸음을 안 하게 된다. 갈비를 먹고 싶을 때가 있고 냉면만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거의 강요조로 들리기 때문에, 그리하여 갈비를 시키지 않으면 홀대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 호텔식당은 메뉴를 보고 있으면 웨이트리스들이 “우리집 스페셜 하세요. 참 좋아요”라고 일반 메뉴의 2배쯤 되는 가격의 스페셜을 은근히 강요한다. 점잖은 사람과 앉은 자리에서 그렇게 자꾸 권하면 체면상 싼 것을 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마지못해 스페셜을 시키는데 상대편이 돈을 내는 식사면 미안해지고, 내가 내는 식사면 화가 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시원한 국수가 맛있는 어느 고기집은 국수만 먹고 싶을 때는 갈 수 없는 곳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 집에 가서 국수만 시키면 종업원들이 불친절해진다는 것이다.
기왕 식당 이야기가 나왔으니 곁다리 불평도 몇가지 하자.
한명이 가도, 두명이 가도, 네명이 가도, 똑같은 양의 반찬을 가져다주는 식당들이 많다. 일일이 종업원에게 더 달라고 해야 챙겨주거나, “필요하면 더 달라고 하세요” 하고는 돌아보지도 않는 곳도 있다. 반찬그릇 크기를 1인용과 2인용 등으로 달리 하여 손님 수에 맞는 것을 내오면 좀 좋을까.
밥 먹는 중간에 후식을 내오거나, 계산서를 미리 갖다 놓는 식당도 기분 나쁘기는 매한가지다. 워낙 한국사람들이 성질이 급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빨리 먹고 돈이나 내고 가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가 없다. 아울러 별로 친절하지 않던 웨이트리스가 계산서를 갖고 올 때만 갑자기 웃으면서 친절해지는 일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우리는 결코 특별히 ‘고급 손님’ 취급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주문하는 상품의 액수에 관계없이 모두가 똑같은 고객이며, 얼마짜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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