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돈(법정통역관)
누구나 자라나는 과정에서 반항 시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절에는 기성세대에서 정립된 제도나 부모들의 전통적인 관념에 이유 없이 반항하고 도전하기 일쑤다. 나도 한때 이런 시절을 겪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신극(新劇)운동에 크게 감명을 받아 방학동안에 친구들을 모아 연극을 꾸민 적이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성공리에 막을 올릴 수 있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대 성공이었다.
신극이 태동되고 있던 시절이었고 연극을 이해하는 선배나 어른들로부터 적지않은 칭찬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자랑스러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집안 어른들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꾸지람을 들었다. 당시는 연극하는 사람을 멸시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책과 문방구를 장작 위에 쌓아놓고 불살라 버리겠다는 통첩을 받았다. 이래서 나는 연극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렇게 극심한 반대에 부딪치자 내 가슴속으로는 연극에 대한 애착이 오히려 미치도록 깊어지는 것이었다. 반발의 작용이었다. 심지어 가출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듬해 대학 지원을 하는 시기가 왔다. 나의 부모들은 내가 당연히 서울에 있는 일류대학에 지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작년의 연극사건 이후로 부모들이 당연시하는 이 대학 지망에 딴지를 걸고 싶은 반항심이 생겼다.
나는 부모 몰래 부산 수산대학에 지원서를 내 두었다. 수산대학이라면 부모들이 그야말로 펄쩍 뛸 상놈인 뱃놈이 되는 학교이니까 말을 꺼내보나 마나 한 것이었다. 시험 때가 되어 나는 부산행 기차를 타고 말았다. 시험을 치른 다음에는 멀리 떨어진 친척집에 숨어있었다.
이 동안에 수산대학에서 합격통지가 왔다.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는 기별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이 기별과 함께 합격을 축하한다는 전언이 있었다. 부모님들이 양보를 하신 것이었다.
대학생활이 시작되기 무섭게 나는 또 하나의 혁명같은 일을 저질렀다. 당시 수산대학이 신극운동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신입생 새 연극부원 모집에 그 일차로 지원하고 말았다. 책이 불살라질 뻔 했던 반항심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청문극회(靑門劇會)라는 신극운동 단체에서 일학년과 2학년 방학을 연극 연습에 다 보냈고 첫 해에 작품을 발표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해가 바뀌고 나이가 더 들어가자 나는 드디어 부모들의 완강한 반대의견과 나의 반항 사이에서 무엇이 과연 바른 길인가를 돌이켜 생각해 보는 철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나의 이 모든 돌출행동이 자라는 시절에 갖게 되는 일과성(一過性) 반항이라는 자각이 들었고 정신을 가다듬고 냉정히 나의 장래를 다시 심사숙고했다. 한 마디로 “아니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역시 반항에서 생긴 것인지 모진 용기가 있었다. 나는 부산에서 짐을 쌌고 이듬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일학년으로 다시 입학했다. 이래서 나는 대학을 6년이나 다니는 행운(?)을 가졌다.
지금 조국에서는 소위 진보라는 청년그룹이 국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보수라는 기성세대가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뒤집을듯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반미, 친북 성향은 반항 시절에 생기는 유혹,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사고(思考)에서 나온 발상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한때 친공산이나 친북이라면 혹독한 대접을 받아왔다. 이 때 민주투쟁을 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친공으로 몰려 억울한 변을 당한 일이 많았다. 오늘의 진보세력이 그 주축이다. 자연히 이 세대에게는 이 때문에 오히려 친공산이나 친북에 우호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이것이 혁명적인 반발의식이다.
게다가 형제인 북의 동포들을 도와야 한다는 감상적 푸로파간다는 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구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반항기
의 사고는 일과성이라는 데 있다. 이런 일과성의 사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나라의 앞일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한 지금 한국의 집권 세력은 모두가 이런 청개구리 사고의 반항아적 모험 세력으로 보인다. 조국의 앞날이 무섭다. 이들 반항아들이 제정신이 났을 때에는 이미 나라는 결단이 난 뒤이거나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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