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춘기(골동품 복원가)
나는 지금 롱아일랜드 기차를 타고 포트워싱턴을 향하고 있다. 오사장! 그는 천만대를 웃도는 적지않은 기업의 사장인데도 나에게 사장이라고 불리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서로 나이도 비슷하여 오 형, 백 형하고 호칭한다.
오 형은 전문성을 띤 골동품 수집가가 아니다. 그저 좋아할 뿐이다.
“백형, 전번 고향에 갔을 때 좋은 골동품을 한 점 가져왔습니다. 와서 좀 봐주시요. 겸해서 술도 한잔 합시다”기차역까지 마중나온 오형의 기차로 집으로 가는 도중 고향에서 건져왔다는 골동품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우선 오형이 입을 열지 않는다. 저만치 오형의 집이 보인다. 그동안 몇차례 보아온 이 집을 볼 때마다 나는 고향의 초가집을 연상한다.미국의 전형적인 숲속의 전원주택! 땅에 엎드린 것 같은, 마치 말이 똥을 싸놓은 것같은 인상은 양지바른 곳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초가집의 정서와 흡사하다.
볼품없는 이런 형의 집을 미국인들은 대를 이어가며 보존하고 있다. 한국에 오는 관광객이 그렇게 보고싶어 하는 한국의 초가집은 빈곤의 상징이요, 지저분하고 촌스럽다 해서 새마을운동 시절 그 씨가 말라버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장작불이 타고 있는 벽난로 앞에 작은 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앉았다. 이때까지 오형은 골동품에 대한 한 마디의 말도 없다. 나는 두 손 안에 위스키잔을 지긋이 거머쥐고는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혹시 하는 기대감에서.나의 시선은 벽난로 우측 앞 공간에 멈췄다. 페인트통 같은 것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멀리, 여기에 앉아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이 풍기는 채취는 페인트통이 아니라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오형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다.
나는 서서히 일어나 거기에 다가가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 연탄! 그리고 그 옆에는 연탄집게! 나는 발에 힘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보았다. 틀림없는 연탄이다. 가운데 구멍이 하나, 하나를 둘러싸고 구멍이 여덟게, 그 변두리에 구멍이 열개, 도합 구멍이 열아홉게, 그래서 19공탄이 아닌가.
손을 연탄에 뻗으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고개만 끄덕인다. 나는 천천히 ‘연탄’을 집어들었다. 그 촉감이 심장에 메아리친다. ‘연탄’을 코에다 댔다. 나의 사고는 구천을 헤매인다.
우리에게 ‘연탄’이란 무엇인가. 생활의 반을 연탄과 더불어 살아온 나와 동포들이다. 무색, 무취, 무미하다는 연탄개스는 곧바로 양잿물이요, 청산가리요, 독가스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이 저승의 사자를 장판 한장 밑에 모시고 온가족이 한 방에서 단꿈을 이루었지. 등 밑에 바늘구멍만 생겨도 저승길이라는 것을 굳이 외면한 채.
나는 자리에 돌아왔다. “오형, 골동품 잘 보았습니다. 이 몸이 미국에 와서 가장 감동적인 고향의 골동품과 마주한 것 같습니다... 내 왜 일찌감치 오형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오형이 나보다 골동품에 대한 감성이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오형은 위스키잔만 기울일 뿐 말이 없다 한참 후에야 입을 연다.“6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자 생활을 하면서 서울 한양대학 뒤에 있는 사근동 달동네에
살았지요. 그것도 방 한칸 얻어서 말입니다. 산꼭대기에 달동네에서는 연탄이 바로 금탄이지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겨울 새벽에 새 연탄으로 갈아끼고 빼낸 연탄에 약간 남아있는 불씨가 아까워 엉덩이를 까고 연탄 위에 쭈그리고 앉아 따뜻함을 즐기곤 하였지요. 연탄은 나에게 이런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서울에 갔을 때 한 장 가져왔지요. 아들 손자들의 교육현장으로 삼으려고 말입니다. 쓰라린 과거는 주기적으로 되씹어 볼 가치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우리 동포 가운데 아직까지 이런 사람이 있다는데 나는 가슴이 따끔해 왔다.
서울에 금송아지가 아니라 연탄을 두고 왔고, 그 연탄이 그리워서, 그리고 2세 교육의 역사의 현장으로 삼으려고 미국에 이민시켜 왔다는 이 아름다운 정신, 이런 분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양지 보다는 음지에 있기를 원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오형에게 큰 죄나 범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오형에게도 고민이 있다. 마누라가 당장 연탄 갖다 버리라는 것이다. 쓰라린 과거가 싫다는 것이다.소파에서 눈을 떴을 때 창밖은 밝아오고 오형은 그대로 잠들어 있다. 나는 쪽지를 남기고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오형의 마누라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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