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1,000만을 넘었다고 했다. 영화관람 가능 인구를 2,000만으로 잡을 때 두 사람 중 하나 꼴로 그 영화를 봤다는 거다. 이쯤 되면 단 순 블럭버스터가 아니다. 사회현상이다.
한국 이야기다. ‘실미도’가 그렇다고 한다. ‘태극기를 휘날리며’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대한민국 국민들로 하여금 일제히 영화관으로 달려 가게 하고 있 을까.
영화가 엄청나게 잘 만들어져서인가. 한 영화 평론가 말대로 뭔가 한국사회의 이상 징후를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붉은 악마’ 현상과는 관계가 없을까. 별 생각이 다 스친다.
지난 주말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았다. 미국서 일고 있는 비슷한 현상에 참여하고 싶어서였다.
그야말로 대만원이다. 그렇지만 지극히 조용한 가운데 흐느낌만 가끔 들려온다. 영화가 끝날 무렵, 부활의 장면에서 박수의 물결이 인다. 아주 조용한 박수다.
영화관을 빠져나가면서도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 인파 속에서는 영어를 모를 것 같은 한국 노인들의 모습도 간혹 눈에 띈다.
무엇이 이처럼 많은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을까. 스토리는 극히 간단한데 말이다. 마태복음 26장 뒷부분에서 27장, 그리고 28장 일부를 충실하게 영상화 한데 불과하지 않은가. 플래시백 장면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들은 대로다. 쉬지 않고 폭력이 난무한다. 그리스도에게만,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폭력이 가해진다. 피가 흥건하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될 때부터,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릴 때까지 반복되고 반복되는 폭력이다.
반(反)유대주의를 부채질한다는 비난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빌라도는 고뇌에 찬 모습이다. 그런데 유대의 제사장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처형만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맹랑한 영화다. 다 아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성경을 모르면 스토리를 쫓아갈 수가 없다. 고대 아람어로 말하고 그 대사는 영어 자막으로 처리됐다. 게다가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맹랑하게 보이는 영화다.
이런 영화에 왜 사람들이 몰려드는가. 계속 맴도는 생각이다.
그 비밀은 아무래도 십자가에 있는 것 같다. 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나.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다. 유대인이 아니다. 로마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바로 인간성, 죄(罪)가 그 본성인 인간성, 그 자체에서 비롯됐다는 메시지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깔리는 이사야서 53장 5절의 구절에서 이미 시사된 메시지다.
그리스도 수난의 책임을 남에게만 전가하는 사람에게는 그러므로 십자가의 은혜도 없다. 예수를 못 박은 건 유대인뿐이 아니다. 죄투성이 인 전 인류다. 한 마디로 기독교의 메시지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최고의 명작이라고 추켜세웠다고 하던가. 바티칸도 몹시 흥분했다는 소식이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12시간을 그 이상 잘 묘사할 수 없다.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찬 사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들린다. 죄의 문제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너무 등한히 하고 있는 미국 교회, 미국 문화에 대한 질책이다.
혹평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중세적 시각으로 표현한데 불과하다는 평이다. 하긴 가톨릭적 요소가 물씬 풍기는 영화다.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지적도 그렇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극 사실적으로 그리다 보니까 섬뜩할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사람이 몰려든다. 10대 영화도 아니다. 벗지도 않는다. 구원의 문제를 다룬다. 인간의 죄를, 도덕을 다루는 심각한 영화다.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게 증명된 것이다. 하나의 사회현상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이런 면에서 미국의 다른 얼굴, 아니 전통적 얼굴을 보게 하는 영화다.
온 세계가 보고 있는 가운데 가슴을 드러낸 재닛 잭슨으로 상징되는 미국, 동성애자 결혼허용 문제로 소용돌이치는 미국과는 별개의 얼 굴이다. 그 얼굴 뒤에 다른 미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보니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문화 전쟁’(culture war)이란 말이 새삼 실감이 간다. 가치관의 전쟁 말이다.
그건 그렇고, 한국인들은 왜 ‘실미도’에, 또 ‘태극기…’에 그토록 열광하고 있을까. 그 점이 몹시 궁금하다. 왜.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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