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휘(소설가)
토이Toy, 원 달라, 원 달라.
나는 한 손에 조그만 곰 인형을 들고 다른 손엔 바니 인형을 들고 자판기 앞을 지나는 사람들한테 소리쳤다. 두시간이나 인형을 들고 여자, 남자, 노인 어린아이들이 지나 갈 때마다 인형을 사라고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토이를 사는 사람은 없었다. 목이 또 아파 온다. 다른 가게들은 그런 데로 손님이 드나들고 있는데 어찌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마수도 못하고 있었다. 장난감이 너무 싸구려 물건이라 그런가. 장사에 경험이 없어 이렇게 마수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좀더 상냥하게 웃으면서 원 달라하고 외친다. 순간 눈물이 쏟아지면서 목이 잠겨들었다. 큰 꿈을 안고 태평양 상공을 날아와 일불 짜리 장난감을 팔고 있다니. 꿈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고향 바닥에서 강 영자하면 알아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힘으로 고향 땅에서 날개 치고 다녔다. 전교 일 이등을 다투는 데다 미모까지 출중한 나였다. 내가 너무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남자들이 가까이 접근해 오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나는 그렇게 한때를 보냈다. 나는 이름 있는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어린 생명들한테 내일의 꿈을 길러 주기 위해서 열변을 토하였다. 그렇게 열심을 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푸대접 밖에 없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나는 좀더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저의 앞으로 주실 재산 지금 주시면 안 됩니거?
아니, 그것이 무슨 말이고?
아버지, 공부를 더하고 싶어서 예.
너 곁에 김 서방이 있다. 난 모른다.
유학을 가려고 합니더.
뭐! 유학?
네. 가족이 전부 가서 한 5년 공부하고 와야 겠습니더.
유학이 그리 쉬운 일이야?
김 서방 형님이 그곳에 안 있습니거.
너 오라비도 안 보낸 유학을 너한테. 생각해 보자.
아버지의 반대에 엄마와 오빠가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해줘 나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시아주버니 동네에 집을 마련하고 나는 학교에 등록하였다. 남편은 펜대를 잡고 일할 곳이 없었다. 미국에서 놀고 먹을 수 없는 일. 남편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전자회사에 들어갔다. 시세말로 공돌이가 되었다. 나도 오후와 주말엔 빵 순이가 되었다. 꿈에도 생각 못한 일들을 지금 나는 하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이 보기보다 힘들고 어려웠다. 치즈 종류는 왜 그리도 많은지, 그리고 만들어주면 주는 데로 먹을 것이지 무엇을 넣지 말고, 무엇은 많이 넣어 달라고 주문할 때 많은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라 당황 서러운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을 잘하나 이곳 생활의 습관을 알고있나.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곳 사회는 허술한 것 같으나 질서가 있고,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법. 그대로 집행되고 실행되고 있는 곳이 이 넓은 대륙이란 것을 알았다.
여보, 자본주의 사회서 돈이 최고인 것 같아요. 난 공부 그만두고 장사를 해 볼까해요.
무엇! 장사? 난 못해 그냥 전자회사 다닐 거야.
그래요. 나 혼자서 할 것이니까 돈 만 달러만 줘요.
뭐! 만 달러. 동네 강아지 이름이야? 난 그런 돈 없어.
여보, 나의 마지막 부탁이고 꿈 이예요. 만약 안 되도 만 달러. 내 죽는 날까지 빵순이 노릇해 그 돈 다 갚을게요.
빵 순이 일하기 싫으면 공순이로 해봐.
여보,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예요. 난 할 것이니까 그렇게 알아요.
아버지도 내 고집을 꺾지 못했는데 당신이 나를 이겨. 어디 두고보자 내 꼭 하고 말 것이다.
내가 장사하는 것을 다들 반대하였다. 먼저 말도 잘못하고, 이곳 생활이 익숙해야 된다고들 하였다. 나는 공부도 안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장사밖에 없었다. 큰 상점보다 주말 장사인 프리마켓이라도 가서 물건을 팔고 그들과 호흡을 하면서 생활해야 이곳을 알고 공부를 해도 머리에 들어갈 것 같았다. 이 사회는 한국 교육방식으로 외우기만 잘하면 되는 사회가 아니란 것을 나는 터득했다.
엄마, 장사 할거야?
응. 왜 엄마가 장사하면 안되니?
큰딸이 동생과 함께 콩나물을 다듬고있는 나에게 와서 물었다.
그럼 저녁밥은 누가 하고, 우린 누구와 놀아.
아빠가 있잖아. 아빠는 장사 안 할거야.
그런데 엄마. 영어 잘못하잖아.
엄마, 원 달라 투 달라, 탱큐 할 줄 알아 그 말만하면 할 수 있어.
나는 딸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쳤다. 13살 먹은 딸은 의아한 표정을 짖고는 자기들 방으로 들어갔다. 이민 자들은 도전하고 노력할 때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먹으로 바위를 깨뜨리고 나아갈 때 미국사회와 인생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이 땅이다. 이곳이 개척의 나라가 아니었나? 나는 주말이면 프리마켓을 돌아보았다. 자본이 어느 정도 들고, 또 어떤 물건을 취급해야 할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남편은 나에게 돈 오천 달러은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동안 알아본 결과 그 이하의 돈이 있어도 되겠지만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한 사람이 나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영자씨. 새로 생긴 가게가 있는데 한번 가 보세요. 새로 짓는 건물인데 스왓밋이라고 비가와도 장사를 할 수 있으니까 좋을 것예요.
나는 그이가 말해준 곳을 찾았다. 건물 임대자를 만났다. 나는 반은 눈치로 반은 그냥 그렇게 하여 200 스퀘어피드 공간을 계약하였다. 물건 놓을 선반을 짜 맞추고 이것저것을 준비해놓고 싸구려 장난감을 구입해 진열해놓았다. 코 따지 같은 가게가 그런 대로 모양새가 있었다. 물건이 진열된 가게를 둘러보면서 이것이 나의 꿈이었나. 기쁘기도 하고 한편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 오픈하는 날 나는 잠을 설치고 일찍 가게로 나갔다. 파킹 장엔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있었다. 내가 미국까지 공부하러왔지 이런 싸구려 장난감 장사하려왔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더 쏟아진다. 나는 돌아서서 눈물을 닦았다. 이것이 현실이고 꿈이 아닐까? 꿈은 또 다른 현실로 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꿈이 밥 먹여주나 장사나 하자. 나는 눈물을 닦고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토이를 들었다.
토이, 원 달라, 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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