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가까이 가면 도망을 가던 어미 닭이 알을 품을 때는 근처에 가도 도망가기는커녕 자리에 버티고 앉아, 건드리기만 하면 오히려 달려들어 쪼기라도 할 기세로 어깨 죽지를 힘주어 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쳐들고 꼬꼬댁거린다. 그것이 신기하여 자꾸 다가가서 어미 닭을 괴롭히다가 어른들에게 혼이 나곤 했다. 그렇게 며칠을 둥지를 떠나지 않고 있던 어미 닭이 자기가 품고 있던 알을 부리로 쪼아 껍질을 깨면 샛노란 색깔의 예쁜 병아리 새끼들이 삐약거리며 나왔다. 노란 개나리꽃과 함께 병아리들은 그렇게 삐약거리며 새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 알을 깔 때가 되면 껍질 속에서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우는 소리를 내는데,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아 껍질을 깨뜨린다. 이 때 병아리가 안에서 우는 소리를 ‘줄’,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고 한다. ‘줄’과 ‘탁’, 이 두 가지 일은 동시에 행하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병아리가 우는 때를 잘 맞추어 쪼아주지 않으면, 병아리는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고 죽고 만다. 그래서, ‘줄탁’은 ‘놓쳐서는 안될 좋은 시기(時機)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며, 그것을 강조하여 ‘줄탁동시’라고도 한다. 동시(同時)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때를 놓쳐도 안되지만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성급하게 서둘러서도 안 된다. 아직 알을 까고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어미 닭이 너무 일찍 쪼아버리면 역시 계란은 병아리가 되지 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고, 시절인연이 닿아야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고 스승이 제자를 교육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쪼아주어야 할 때가 된 알을 그냥 두면 세상에 나와 닭이 될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 듯이, 자식과 제자를 언제까지나 품속에 감싸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적절한 때에 아픔을 겪더라도 껍질을 깨고 나와 독립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품고, 쪼아주어야 할 때를 잘 포착하여, 꾸지람도 하고, 종아리도 때리며 자식을 훈육하여 홀로 서기를 하게 해주어야 한다.
선가(禪家)에서는 ‘줄탁’을 두 사람의 뜻이 서로 계합(契合)하여 일치하는 일을 비유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달음의 내용이 서로 전해지고 합치된다는 뜻이다. 줄탁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지지만, 함께 공부하는 벗인 도반(道伴)들끼리도 이루어진다. 함께 공부해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는 서로 위로도 하며 품어주면서, 때로는 껍질을 쪼듯이 따끔하게 조언하고 충고도 한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는 도반을 줄탁동기라고도 한다. 뜻이 서로 같이 않으면 진리를 추구하고, 함께 진리의 길을 가는 동반자인 사제지간(師弟之間)이나 도반이 될 수가 없다.
세상의 공부는 자꾸 새로운 지식을 쌓아서 아는 것을 늘여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수양과 종교적 각성, 수행을 위한 공부는 무엇을 쌓고 늘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는 것을 비우고,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틀인 고정관념과 편견, 선입견, 분별심, 아상을 깨는 것이다. 거듭나고(重生),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하는 것이다. 수행의 길은 끊임없이 거듭나고 또 거듭나도록 자기 허물을 자꾸 벗어 던지는 것이다. 옛것을 집착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면 곧 굳어져 버리고 발전을 멈추고 만다. 벼랑 끝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百尺竿頭進一步), 그것이 극기(克己)이며, 무아(無我)의 실천이다.
종교적 수행과 자기 수양을 위한 공부는 자기를 버리는 것이며, 껍질을 깨고, 허물을 벗고, 옷을 벗는 것이다. 옷은 사회적으로 붙여진 모든 이름과 직책이다. 허물을 벗을 때 더욱 성장 발전한다. 껍질을 벗기고 벗겨서 더 이상 벗길 것이 없을 때, 본래 벗길 것이 없었음을 알게 된다. 틀을 깨고 보면, 더 이상 집착할 것도 없고, 지키고 간직해야 할 것도 없다. 텅 빔 속에 오히려 충만한 자유로움이 있다. 그것이 진짜 자유이며, 재미이다. 지극한 즐거움 곧 극락(極樂)이다. 줄탁동시를 통해 서로 자기의 껍질을 깨고 거듭날 때, 진리의 깨달음 속에서 스승과 제자, 모든 벗들이 동시에 모두 도반이 되는 길은 그렇게 열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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