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대통령이 ‘결혼 전쟁’에 들어갔다고 말한다면 지나칠까? 1년 전 ‘자국민 보호와 세계 평화 수호를 위해’이라크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던 부시대통령이 이번에는‘결혼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선전포고를 했다.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결혼의 본래 의미를 지키겠다며 동성간 결혼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했다.
대통령의 ‘선전포고’에 대한 반응은 즉각 터져 나왔다. 유명 코미디언 로지 오도넬이 26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가 동성 파트너와 결혼식을 올리면서 부시의 헌법개정 촉구를 맹렬히 비난했다. 동성간 결혼증서가 발급된 지 10여일, 결혼한 커플이 3,300여쌍에 달하면서 뉴스의 초점에서 잠시 빗겨나갔던 샌프란시스코 시청사는 유명 연예인의 결혼으로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통령 선거의 해에 ‘가정’이라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가치가 이슈로 부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공화 양당이 서로를 차별화할 만한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해일수록 가정, 낙태, 교내 기도 등 전통적 가치관을 자극하는 이슈들이 전면에 내세워지곤 한다. 부시대통령도 이라크 전쟁 수행과 감세 단행으로 파생한 인기가 몇 달 전만 같았어도 헌법 개정까지 동원하며 동성애 문제를 건드리지는 않았으리라는 해석이 있다.
보수표밭을 노리고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부시, 동성 커플들의 결혼을 독려하며 반격을 가하는 오도넬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1992년 선거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했던 그해에도 ‘가정의 가치’가 한바탕 논란이 됐었다. 당시 총대를 멨던 주인공이 부시가 아니라 댄 퀘일, 도마 위에 오른 사안이 동성 결혼이 아니라 독신모였던 것이 다른 점이다.
그해에도 선거쟁점은 분명하지 않았다. 냉전시대가 막 끝난 후여서 국방이나 대외정책은 이슈가 되지 못했고, 경제문제는 너무 심각해서 특히 공화당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전통 가치를 옹호하는 공화당의 이미지.
퀘일은 당시 한창 인기 있던 코미디 드라마 ‘머피 브라운’을 공격했다. 극중에서 독신여성인 머피가 아빠 없는 아기를 낳는 내용을 비난하며 “독신모를 미화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퀘일 대 머피’의 대결은 처음 퀘일의 승리로 보였다.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할말이 없는 게 당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신모의 대변인으로서 머피는 할말이 많았다. 몇 달후 시즌개막 드라마에서 머피는 가정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하며 퀘일의 꽉 막힌 입장을 비난했다.
미국인들에게는 친누이처럼 친근한 캔디스 버겐이 머피로 출연해 주장한 요지는 “가정의 모습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는 것. “선택에 의해서건 상황에 의해서건 가정은 온갖 모양과 크기로 이뤄진다. 궁극적으로 가정을 정의하는 것은 헌신과 관심, 사랑이다”고 머피는 역설했고 결과는 퀘일의 참패로 끝났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온전한’ 가정만을 존중하기에는 그렇지 못한 가정이 너무 많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동성 결혼은 독신모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지만 결혼의 권위가 추락한 데서 파생한 문제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우리의 할머니 세대가 청상 과부로 일생을 마치고, 우리의 어머니 세대가 시앗을 눈감는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결혼의 절대적 권위와 상관이 있다.
민족마다 결혼풍습이 다르지만 한가지 가장 보편적인 풍습은 결혼 반지를 끼는 것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로부터 시작된 반지는 원이 영원을 상징, 반지를 낀다는 것은 영원한 결합을 의미한다.
요즈음은 반지를 끼는 일도 빼는 일도 너무 가벼워졌다. 최근 인구 센서스를 토대로 한 조사를 보면 결혼해서 25주년을 맞는 부부는 33%, 50주년을 맞는 부부는 50%에 불과하다. 초혼에 실패한 부부들을 보면 보통 결혼 8년을 못 넘기고 이혼한다. 동거도 너무 흔해서 모든 신혼부부의 절반은 동거를 거친다. 게다가 태어나는 아기의 1/3은 사생아이다.
전통적 결혼, 가정을 고집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 결혼의 의미를 다시 검토해야할 시점에 왔다.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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