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베이지역에 사십니까? 물가, 집값, 세금 어느 하나 싼 것이 없는데요
불경기가 한창이던 2년 전 가까이 지내던 한 분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그는 베이지역이 좋아 이곳에서만 20년을 넘게 사신 분이었다.
날씨가 좋아 살지요 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리고 베이지역의 물가, 집값, 세금이 비싼 이유는 ‘기후값’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기후가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렇다 보니 물가가 비싸지고, 생활비가 많이 들어도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타주로 이주를 했다. 그는 이주 이유를 떨어져 사는 자식들과 가까이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이주를 결심한 이유는 반드시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래 살아 정든 곳이기는 하지만 날씨 빼고는 이제 베이지역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보다 불경기가 심해 수입은 시원치 않은데 물가, 집값, 세금은 비싸니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삶의 질도 높이고, 자식들과도 가까이 살기 위해 이주를 단행했다.
거기 집 판돈의 절반 값으로 여기서 2배나 큰집을 마련했어요. 물가가 싸니까 생활비도 훨씬 적게 듭니다. 남는 자금으로는 괜찮은 스몰 비즈니스를 하나 운영하고 있지요
최근 걸려온 그의 전화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쳐 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베이지역에 사는 이유는 각자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베이지역에 사는 사람들 치고 그의 이주에 공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최근 베이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새 삶을 찾아 이주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인들은 그래도 덜하지만 주류사회 사람들은 심각하다고 한다. 탈 베이지역의 행렬에는 기업들이 더 민감하다. 이미 적지 않은 기업들이 사업 본거지를 사업 여건 좋은 타 주로 옮겨가고 있다. 한마디로 베이지역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쾌 유명한 한인기업가 한사람도 이스트 베이에 있던 생산시설을 이미 여건이 좋은 타주로 모두 옮겨 놓은 지 오래고, 최근에는 본사까지 아예 옮겨가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베이지역에 대한 낙관론을 견지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한 베이지역의 경쟁력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과거 불황 때도 그랬지만 머지 않아 이번 불황도 극복하고 다시 활력을 찾을 것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런 낙관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궁색하다.
반면 베이지역의 경쟁력에 대한 경제전문기관의 위험경고는 넘쳐나고 있다.
‘베이지역이 높은 생활비용 때문에 경쟁력 저하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베이지역경제포럼의 분석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비상벨 소리다.
최근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베이지역의 1인당 재화 및 서비스 생산 규모는 아직 전국 최고 수준이다. 2002년 베이지역은 1인당 6만3,400달러어치의 재화를 생산, 전국평균보다 94%나 높았다.
그러나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와 다름없다. 높은 생활비용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활비용을 감안하면 이 94%는 31%로 쪼그라든다. 31% 역시 주류사회의 여건이 그렇다는 것이지 한인들의 삶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베이지역 한인들의 평균 재화생산 통계는 전국 평균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베이지역 주요도시들이 전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도시로 최근 조사된 것도 베이지역 경쟁력 저하를 입증한다.
클레어몬트 맥키나 칼리지와 경제조사기관인 코스몬트사는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오클랜드 3곳을 전국에서 세금, 물가, 임금 등 사업비용이 가장 비싼 도시로 꼽았다. 몬트레이, 알라메다, 리치몬드, 발레호, 모데스토, 스탁턴 등도 그 뒤를 잇는 도시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이런 상황은 캘리포니아 전역에 공통되는 현상이지만 베이지역은 유독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베이지역이 이제 좋은 기후만 가지고 버틸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기후가 좋아도 먹고사는 문제가 힘들어지면 사람과 기업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기후가 조금 안 좋아도 생활여건이 경제적으로 안락해진다면 떠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대책이 마련돼야 할 상황이다. 그리고 그 대책은 주 정부와 베이지역 각 도시가 서로 협조해 정책적인 큰 그림으로 수립돼야 할 것이다.
생활 환경이나 기업환경은 정부규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규제가 심하거나 시 경제사정이 나쁜 도시일수록 세금 등 개인과 기업들에 부과하는 각종 부과금이 많기 때문이다.
과다한 부과금은 전력, 교통, 보건, 보험, 주택 등 제반 물가를 동반 상승하게 한다.
이는 다시 개인과 기업의 탈출 현상을 초래하면서 지역 경제상황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과거에는 이런 고물가의 영향이 타지역과 격차가 큰 소득규모와 생산성으로 상쇄됐다. 그러나 이제는 물가상승비율이 더 높아 경쟁력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후 빼고는 베이지역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게된다는 것은 베이지역의 경제적 몰락과 같은 의미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좋은 기후만으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기후도 생활 여건이 좋아진 다음에야 돋보인다.
베이지역에서는 아직 체감할 수 없지만 다행히도 지표상으로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경기회복은 개인, 기업, 정부에 모두 희소식일 것이다. 누구보다 정책 당국자들은 지금의 어려움을 넘기기 위해 경기회복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경기가 회복되면 베이지역 경제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러나 베이지역의 경쟁력 강화는 경기회복과 무관하게 해법이 찾아져야 한다. 경기회복은 베이지역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시킬 수 없다. 경기가 활성화되면 자치정부의 세수가 늘어날 것이므로 현재의 어려움은 많이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고물가의 섬’이라는 불명예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기가 호전되면서 지금까지의 문제점들이 그냥 묻혀 넘어갈 공산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회복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베이지역 체질개선에 ‘독’이 될 수도 있다. 베이지역 정책당국자들은 이번 불황을 지역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생활비와 사업비용이 적게 들어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베이지역으로 변모시켜주길 바란다.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다행이다. 안 떠나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 얘기는 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떠나도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좋으나 싫으나 온갖 어려움을 온 몸으로 껴안고 살아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베이지역은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야 한다.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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