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특파원은 정치부 기자 출신입니까, 경제부 출신입니까.”“서울경제신문에 줄곧 있었으니, 경제부 기자인 셈이지요. 그런데 왜 물어보는 겁니까?”“정치와 관련된 컬럼이 자주 나와서 물어보았던 것입니다.”언젠가 가까운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경제신문 기자가 왜 정치 문제에 아는 척 하느냐는 핀잔 같아서 나름대로 설명을 했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자체 원리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사회가 되면서 경제 외적 변수, 즉 정치, 사회문제 등이 경제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경제만을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외적 변수 가운데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뉴욕한국일보에 ‘특파원 코너‘를 신설, 칼럼을 쓴지도 벌써 3년이 됐다. 2001년 3월 부임했을 때 김충용 당시 편집인의 꼬임(?)에 빠져 겁없이 덜컥 칼럼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륜과 식견, 지식이 차지 않은 미숙한 상태에서 원고지 10장 분량의 긴 글을 쓰는 것은 고역이었다.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주제조차 설정 못해 땀을 빼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아무렇게 쓰고 던져버린 글이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한다. 나름대로 우국충정에 불타 써놓은 원고가 특정 정파에 이익이 된 일도 없지는 않았다. 2년전 한승수 외교부장관이 유엔총회의장을 겸하며 서울과 뉴욕을 들락날락했을 때 국내에선 외교부장관 자리를 떼고 유엔 일에 전념하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그때 미국인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비교하며 외교 전선에 싸우고 있는 사람을 밀어주기는커녕 흔들지 말라고 쓴 적이 있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김대중 정부 말기에 한나라당에 입당했을 때 왜 그런 글을 썼던가, 후회가 막급했다.
하지만 독자들이 칼럼을 읽고 격려해줄 때는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뉴욕 맨하탄에서 이발사 아저씨가 “칼럼을 잘 읽었습니다”고 대뜸 던지는 말에 그 다음주 일주일 내내 다음 글을 무엇을 쓸까 고민했었다.
플러싱의 한 식당에서 뉴욕 시청에 근무한다는 분이 선뜻 악수를 청하며 좋은 글을 부탁하기도 했다. 시티은행의 한 간부도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대해줬다. 한주 한주 칼럼을 쓸때마다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읽는 분이 있다는 것을 등 뒤로 느끼며 짧은 식견에 편견으로 가득찬 칼럼을 쓰는게 아닌가, 부끄러울때도 많았다.
3년간 칼럼을 연재하며 배운 것도 많았다. 독자들이 빠꼼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에 책을 의무적으로 많이 읽어야 했고, 특정 사안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정치의 문제가 경제에 영향을 주고, 특히 2002년 한국 대선과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한미 동맹 약화가 한국 경제에 나쁜 영향
을 주는 현상도 발견했다.
경제 문제로만 사안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정치 문제를 경제와 연결하는 시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정치부 기자 출신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던 것 같다.칼럼을 쓰면서 나 자신이 점점 보수화되는 경향을 발견했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우연만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 꾀나 진보적 그룹에 속했는데 언젠가 보수 진영에 속해 있지 않나 착각할 때가 많았다. 글로벌 단일 경제가 구축되고, 그 속에서 한국 경제가 살길이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할 때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필요하고,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 절실하다.
진보적 그룹이 외치는 반국제화는 오히려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잃게 하고, 시장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경제의 파이를 키우고 가난한 자에게 더 많은 빵을 준다는 글로벌리즘의 현실 앞에서 20년전 반독재 투쟁을 하던 시절의 진보는 이미 논리적 토대를 상실했질 않은가.
뉴욕 금융시장은 세계 유동성의 절반이 움직이고, 사실상 글로벌 경제란 뉴욕 월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곳에서 취재하고, 글을 쓰면서 한국 경제를 보다 국제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김인영 <서울경제특파원>
inkim@koreatimes.com
* 김인영 특파원은 3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 20일 뉴욕을 떠나 서울경제 본사로 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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