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먹성
2주전 주방일기를 쓰기 싫어서 ‘열가지 건강식품’으로 때웠을 때 수많은 아줌마들로부터 야단을 맞고 항의도 받았다. “너무 했다, 이게 뭐예요” “한주 거저 먹었잖아 이거” “이렇게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누가 읽어요?”
나의 고충은 헤아리지도 않고 야단을 쳐대는 독자들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평소에 재미있게 읽어준다는 표현이니 감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하다 못해 아들 얘기라도 쓰지 그랬어요”
가끔 쓰는 우리 아들 이야기에, 아들 키우는 엄마들이 공감했었나보다. 그래서 오늘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우리 아들의 먹성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아기들이 태어나서 처음 하는 말은 대개 ‘엄마’ ‘아빠’ ‘맘마’ ‘빠이빠이’ 같은 단어들이다.
이런 아기 공통의 단어들 외에 우리 아들이 자체적으로 처음 사용한 말은 ‘먹어’였다.
막 걸음마를 하기 시작했을 무렵이니 돌도 되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엌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데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와 내 다리춤을 붙잡고 칭얼대었다. 바쁘게 일하던 나는 안아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내 할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아기가 평소보다 더 보채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어이구, 우리 아기 왜 이러시나, 뭐가 불편하신가?” 별 생각없이 달래는데 느닷없이 아기의 입에서 ‘먹어~’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너무 놀래서 하던 일을 올스톱하고 아기에게 물었다. “먹어~라구? 너 배고프니?” 아기는 그제야 살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고팠으나 자신의 허기를 표현할 길이 없어 보채던 아기는 엄마가 자기에게 무엇을 먹일 때마다 숟가락을 입에 들이밀며 “먹어, 어서 먹어” 했던 것을 기억했나보다. 반복해서 들은 말을 기억해내어 처음으로 스스로 한 말이었다.
나는 너무 놀랍고 재미있어서 아기를 붙들고 깔깔 웃으며 “먹어? 너 먹을래?” 했더니 아기가 따라서 “머걸래?” 한다. 내가 다시 “먹을까?” 하였더니 아기도 “머그까?”한다. 나는 재미로 계속 말을 시키고, 아기는 무엇이라도 얻어 먹을까하여 필사적으로 따라하고 있었다.
나중에 키우면서 보니 우리 아기는 그다지 말이 빠른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 되기 전에 ‘먹겠다’는 말부터 시작했던 이 사건은 아들의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일화로 남게 되었고, 나는 그때부터 ‘이 아이는 어디 데려다놔도 먹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란 아들은 과연 먹는 일에 관해서만은 주관이 뚜렷하여서 일단 자기가 먹고 싶다고 정한 음식에 대해서는 일보의 후퇴가 없다. 예를 들어 육개장을 해달라고 하면 나는 대개 하기가 싫어서 “그건 너무 오래 걸린단다”라고 발뺌하고 본다. 하지만 아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괜찮아, 기다릴께” “엄마, 나 오래 참을 수 있어”
경이롭기도 하지, 어린아이가 배가 고프면 못 참고 빨리 아무거나 달라고 해서 먹어야 정상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일은 이제껏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아들이 매일 내게 묻는 말은 당연히 “오늘 저녁 뭐 먹어?”이다. 퇴근 후 나를 보자마자 묻는 첫마디라, 어떤 날은 묻기도 전에 내가 먼저 선수치기도 한다. “나도 몰라” 라고.
무엇을 해먹느냐를 놓고 매일 저녁 모자간에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실랑이에 관하여는 또 하루종일을 이야기해도 모자라리라. 내가 요리하려는 메뉴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맞지 않는 날이면 얼마나 툴툴거리며 은근한 불평과 압력을 행사하는지, 먹고사는 일의 피곤함이 돈 버는 데에만 있지 아니함을 절실히 느끼곤 한다.
오늘 잘 먹고 나면 또 “내일은 뭐 먹어?”라고 물어서 나를 질리게 하는 아들.
먹는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자기가 아주 흡족하게 잘 먹은 날은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는 나에게 와서 뽀뽀를 해주고 간다. 내가 자기와 뽀뽀하는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들이, 자진해서 내게 뽀뽀하거나 날더러 하라고 뺨을 내미는 유일한 순간이 ‘맛있는 식사’ 이후인 것이다. 아들의 뽀뽀를 계속 받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엌에 들어가 일전을 치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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