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50년만의 강추위였다고 한다. 그래서 ‘삼한사온’의 법칙도 무시한 채 온 세상을 영원히 얼어붙게 할듯이 연일 눈보라가 몰아쳐 교통을 마비시키고 20세기 문명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게 마련인 것이다. 이미 입춘이 지났고 우수를 지났으니 이제 절후는 봄으로 접어든 것이다.
조용히 내려쪼이는 태양의 온기가 한겨울의 햇볕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 온기에 기승을 부리던 동장군은 꼬리를 사리게 되고 곳곳에 쌓인 잔설들이 맥없이 녹아내린다. 머잖아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파릇파릇 새싹들이 얼굴을 내어밀 것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생명의 약동인 것이다.
봄같은 겨울은 사계(四季)의 한 매듭을 풀어버린 허전한 느낌마저 들게 할 것이다. <春風不爲吹愁去, 春日偏能若恨長(봄바람은 불어도 내 시름 실어가지 못하네. 봄날은 길기만 해서 내 한도 끝 닿은 데 없구나)> 가지(賈至 718~772)의 시 한 구절이다. 봄을 즐거움으로 맞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 함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Spring은 봄 이외에 청춘, 도약, 비약, 용솟음치는 기운, 활력, 생기, 근원, 원천, 원동력, 탄성, 폭발 등 그다지도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음에 새삼 놀란다. 동결(凍結)의 암흑과 긴장에서 풀려나 신선한 햇살 속에서의 약동은 곧 생명의 희열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쉘리(P.B. Shelley 1792~1822)는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라고 엄동설한 속에서의 양춘가절을 내다보는 희망적인 시를 읊었던 것이다. 쉘리가 <西風賦>를 읊던 시절은 전유럽이 무서운 겨울에 갇혀있었던 때였다.
혁명과 반혁명이 잇따라 일어나고, 제국주의와 독재가 세계를 질식시키던 때였다. 정상배들의 횡포가 정치였으며, 그들은 자신의 권력 유지와 기업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서슴치 않고 감행했던 것이다. 높은 이상(理想)은 경멸 당하고 오직 추잡한 정치놀음이 인간을 비참한 지경으로 이끌고 갔었다.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쉘리는 황야를 뒤엎는 질풍과 같은 소리
로 “봄은 멀지 않으리!”라고 목청을 돋우어 외쳤던 것이다.
때가 되니 역사는 기어이 그의 노래처럼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봉건제도는 한 겹 두겹씩 무너져 가고, 한 편에서는 산업혁명의 우람찬 소리가 들려왔다. 프랑스의 혁명은 인간의 쇠리를 생생하게 들려주었으며 유럽은 삽시간에 활기와 생명의 행진곡에 휩싸이게 되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겨울 속에서 봄을 예언했던 쉘리의 애절했던 목소리는 실로 인간에게 봄다
운 봄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제 마음의 옷깃을 여미며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 보자.자유와 평화와 정의와 개혁의 선거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됨으로써 백성을 기만하고 우
롱한 것에 대하여 한 점 뉘우침 조차 없이 오히려 백성을 윽박질러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넣은 채 사리사욕에만 혈안이 되어 백성을 위한 선정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으니 계절이 바뀌어 봄이 왔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지 못해 봄에 대한 느낌 조차 상실하고 말았다고 할 것이다.
을씨년스럽기만 한 겨울의 양상은 정치계 뿐만 아니라 종교계 또한 그에 못지 아니한 추태를 도처에서 연출하고 있는 형편이니 도대체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갈 것인가?
인생의 봄은 언제쯤에나 도래할 것인가? 산 너머 또 산이 계속되지만 절망하지 않고 넘고 또 넘느라면 머잖아 꽃 피고 새 우는 봄동산이 도래할 것을 희망하면서 마음문을 활짝 열고 찾아온 봄을 맞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수(雨水)가 지나면 죽은듯 굳어있던 땅도 풀리고 초목들은 생명의 리듬을 찾게 된다고 했다. 겨우내 죽은 것처럼 앙상했던 나무가지에 새 움이 돋아 꽃을 피우고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가 봄소식을 전함은 만고 불변의 법칙일진대 어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예외일 수가 있으랴! 봄은 다만 식물들의 행사로만 끝이 나서는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들도 저 모든 생물들이 겨울을 자랑스럽게 이기고 다시 약동을 시작하듯이 새로운 이상과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봄은 자연만의 계절이 아니라 인간의 계절로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새 봄과 함께 약동의 의지와 그 힘찬 호흡을 온누리에 발산해야 할 것이다.
이성철(롱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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