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흔히들 말하는 사랑의 길을 짚어보면 두 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유심(有心)쪽이고 다른 하나는 유신(有身)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 다 사랑에 대한 좋은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과연 엄밀히 따진다면 어느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진실로 필요할 때 느낄 수 있고 가깝게 할 수
있는 사랑이 진정으로 따스한 사랑이 아닐런 지.
유심은 마음으로 하는 관념적인 것이어서 아름답고 근사하기는 하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만져지고 필요할 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랑은 오히려 몸으로 하는 유신쪽이 아닐까. 예를 들어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냥 고개만 끄떡하는 것보다 악수를 다정하게 나누면 더 사랑을 느끼게 되어있다. 또 아이들한테도 그냥 말로만 ‘잘했다’ ‘잘했다’ 하기보다 머리나 등을 쓰다듬으면서 하면 훨씬 사랑의 표현이 직접적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부부간이나 사랑하는 남녀간에도 손이라도 서로 잡고 눈길을 따스하게 주고받으면 훨씬 더 정이 들것이다. 이웃간에도 서로 가까이 하거나 자주 만나 차라도 한잔 마시면 따스한 정을 느낄 것이다. 사랑과 정은 이처럼 무언가 실질적으로 마음이 표현되고 행동이 오고갈 때 더욱 풍성해 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있었던 사랑도 식어지게 되어 있다.
유심은 정신적으로 하는 아가페 사랑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그저 그림처럼 아름다울 뿐,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큰 효과를 주지 않는다. 쌀이 들어있는 뒤주가 가까이 있고 쌀독에 쌀이 필요할 때 있어야 배고프면 해먹을 수 있지 먼데 두고 생각만으로 ‘쌀 좋다’ ‘배부르다’ 하는 것은 관념적일 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가까이 있어 만져지고 실제적으로 필요할 때 느끼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멀리 떨어져 그리워하고 생각만 하는 것은 아름다울런지는 모르나 실제적으로 소용이 되는 사랑은 아니다.
옛날만 해도 사람들이 많이 순수해서 아가페 사랑을 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랑이 아니면 하려고 들지 않는다. 아가페 사랑하면 종교에서 얘기하는 하나님의 사랑, 부처님의 사랑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몸으로 직접 만져지고 실제적으로 부딪치고 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가페 사랑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란 이런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같이 피부로 느끼고 만져질 수 있는 것이라야지 관념적으로 있는 것은 소용이 되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무엇이든 상대적이기 때문에 관념적인 것보다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가 소용되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부부간에도 친구 사이에도 자녀간에도 서로가 열심히 주고 받고 성의와 정성을 다해서 해야 사랑이 존재한다. 마음으로 아무리 생각하고 멀리서 그리워한다 해도 그 것은 소용없는 일이고 또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도 이제는 아니다.
김윤태 시인은 유신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 /추운 날 하얗게 눈 덮인 길처럼/ 당신이 손수 덮어주는 건/ 있는 거라곤 사랑하나/ 추울 때마다 그 걸로 덮어주는 거겠지/어차피 사랑은 한 채의 이불이니까/ 라고.
성경에 ‘천하가 네 손에 있어도 네가 죽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 또 불경에 ‘너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그대로 되리라’ 라는 말이 있다. 이두 구절은 살고있는 우리 목숨 자체의 중요성을 짚어주기도 하지만 관념보다는 목숨, 다시 말해서 우리가 몸으로 행동하고 살고 있는 우리육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선택해야 할 사랑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관념적인 사랑도 우리에게 아름답게 닥아는 오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랑의 느낌은 악수를 하거나 등을 쓰다듬어주거나 또는 몸으로 느끼는 그런 사랑이 우리에게 실체적으로 다가오는 사랑이다.
14일은 남녀간에 장미꽃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전하는 발렌타인 데이다. 이날은 부부간에, 사랑하는 사람간에, 아니면 사랑하는 자녀에게 평소에 마음으로만 간직하던 사랑의 표현을 장미꽃 한 송이를 통해서 해보면 어떨까. 장미꽃 한 송이 손에 꼭 쥐어주며 ‘그 동안 애썼어’ ‘수고했어’ ‘너무 잘 했어’ 하며 사랑을 고백하면 아마도 상대방은 감동에 넘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마음으로만 하는 사랑은 오로지 그림일 뿐이다.
여주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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