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핑은 시시, 스포츠 보러 갈래 !
스포츠 팬을 자처하는 여성 4인방, 트레이시 김, 비키 노, 써니 오, 엘리사벳 오씨가 로젠 브루어리에서 레이커스의 경기를 보며 관전평을 하고 있다.
여성 스포츠팬들의 동호회도 많다. 한국의 하키인들이 결성한 다음 카페 ‘팀니케’의 회원들.
’슛 폼 어때?’
’풋볼 과부’(football widow)란 말이 있다. 풋볼광인 남편들이 주말 내내 ESPN을 끼고 살아 휴일을 저당 잡히는 아내들의 과부신세를 일컫는 표현이다. 남자들이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 심하면 루저(loser)라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버티며 화면에서 눈을 못 떼는 걸 보면, 스포츠와 남성성의 상관관계는 연구대상 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풋볼만이 아니다. 야구, 농구, 축구도 갖다 붙이면 다 과부다.
그러나 남자 아니라 전문가 뺨치는 여성 스포츠팬도 알고 보면 많다. 대학생 제인 현(20)씨는 LA의 농구팀 레이커스와 필라델피아 76ers의 광 팬. 웬만한 농구선수 이름은 다 꿰고, 그중에도 76ers의 출중한 가드 앨런 아이버슨을 흠모한다. 챔피언십 경기는 물론 레이커스나 76ers가 출전하는 경기는 다 챙겨본다.
배우 트레이시 김(32)씨는 ‘풋볼 폐인’이다. 손꼽아 기다린 풋볼 시즌이라, 주말마다 TV를 껴안고 일희일비했다. 영원한 댈러스 카우보이 팬이지만 농구, 골프 등 다른 스포츠도 두루 즐겨 ESPN이 고정 채널이다.
남들 샤핑 갈 때 스포츠 바를 즐겨 찾고, 누가 이기고 지며 어느 선수가 연봉 얼마 받는지가 최대 관심사라는 여성 스포츠팬들. 이들을 LA 레이커스 대 애틀랜타 혹스(Hawks)의 경기가 열린 지난 9일, 대형 스크린이 있는 레스토랑 로젠 브루어리에서 만나봤다.
샤킬 오닐과 칼 말론의 부상으로 레이커스가 4연패 행진을 기록하던 1월 초. 금요일인 9일 오후 7시 30분, 레이커스 대 혹스의 경기가 시작하자 로젠 브루어리에는 농구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나른한 재즈가 감돌던 실내는 대형 스크린이 사운드를 켜면서 왁자하게 달아올랐다.
오랜만에 작당하고 만난 여성 4인방, 트레이시 김(32), 비키 노(31), 써니 오(29), 엘리사벳 오(27)씨.
분위기가 무르익자 ‘Go Lakers’와 안티 레이커스로 갈라져 화면에 빠져들었다. 이날은 줄곧 죽 쑤던 레이커스가 모처럼 분풀이한 날. 1쿼터부터 레이커스가 34:7로 앞서다 3쿼터부턴 50점 이상 벌리는 등 시종 주도해 경기는 싱거웠지만, ‘상대팀을 가지고 노는’ 레이커스의 현란한 플레이에 탄성과 탄식이 엇갈린다.
자타가 공인하는 스포츠 팬 트레이시 김씨는 특히 풋볼 매니아다. 세 살 때 댈러스로 이민 와 아빠와 같이 풋볼 보면서 큰 ‘풋볼 키드’. 스포츠 얘기가 나오자 댈러스 카우보이를 외치며 금새 화색이 도는 게, 중증 수준이다.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카우보이가 수퍼볼까지 오른 강팀 캐롤라이나 팬서스(panthers)한테 깨지는 바람에 낙심이 컸지만 한번 팬은 영원한 팬인 순정파다. 연중 풋볼 시즌을 손꼽아 기다리는 건 기본. 선수들 이름을 줄줄이 꿰고, 주말이면 맨해튼 비치 등지의 스포츠 바를 즐겨 찾는다.
김씨는 남들은 화장품이나 옷 샤핑이 좋다지만 나는 누가 이기고 지고, 어느 선수가 연봉 얼마 받는지, 그게 관심사라며 스포츠 바는 화면 여러 개를 동시에 보면서 요란뻑적지근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어 재미가 배가된다고 한다.
이에 비해 농구는 경기장을 자주 간다. ‘풋볼보다 싸서’가 큰 이유인데 공짜 티켓이 생기면 당연히 가고, 올스타 게임은 꼭 챙겨본다. 그러나 레이커스는 영 맘에 안 든다는 투. 샤킬, 코비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빠지면 무너진다는 게 첫째 이유다. 팀은 모든 구성원의 합주인데, 레이커스는 스타에 너무 의존하면서 오만하다는 평이다.
팬들도 ‘민들레’가 못 돼 레이커스가 잘하면 좋아하고, 못하면 비난하는 게 진정한 팬의 자세가 아니라며 열변을 토한다. 그래서 김씨는 늘 상대팀을 응원하는데, 지난번 유타전에서는 스테이플스에서 ‘Go Utah’를 외쳐 눈총을 받기도 했단다. 이날도 그녀는 혼자 혹스를 응원, 다른 세 여자의 야유를 감당해야했다.
미시족인 비키 노씨는 ‘두루 즐기는’ 스타일로 특히 야구와 배구를 좋아한다. ‘관람파’ 보다 ‘행동파’라 결혼 전 교회 소프트볼 팀의 열성 멤버로도 활약했다. 월드컵 땐 임신 중인데 잠을 못 자 고생했고, 어느 한여름 햇볕 뜨거운 날, 배구를 하는데 90도로 떨어지는 공과 햇빛이 분간 안 돼 이마에 정통으로 맞고 쓰러진 기억도 있다.
그러나 한 스포츠 한다는 노씨도 이른바 풋볼 과부다. 룰을 몰라서다. 남편은 열렬 팬이라 시즌 때면 주말마다 TV바라기를 하고, 경기가 재미없는 노씨는 따로 논다.
노씨는 결혼하고 보니 남편이 어떤 스포츠에 극성인데 아내가 전혀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라며 서로 대화가 안 통하는 데다, 아내가 신경질 나 싸움 나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골프. 남편이 세미 프로 골퍼 출신이라, 21개월 된 아기가 좀 자라면 골프를 배워 공동 취미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써니·엘리사벳 오씨 자매는 축구 팬이다. 지난 월드컵 때 날밤 샌 건 물론이고, 타운 내 은행에 근무하는 써니씨는 토끼눈으로 빨간 티를 입고 출근하기도 했다.
난리도 아니었죠. 한인이라면 다들 흥분하는 상황인데 저희야 축구 팬이니, 오죽 했겠어요. 거의 매일 밤새는 강행군에다 한동안 얼굴에 태극기 그리고, 망토 두르고 다녔죠
이들 자매가 유난히 축구에 빠지게 된 건 9년 간 아르헨티나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86년,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챔피언에 등극한 그 해 공항에 내렸는데 사람들이 축구선수들 가는 곳마다 냄비 두드리고, 휴지 던지며 열광하는 걸 보고 묘한 희열을 느꼈단다.
대학생 제인 현(20)씨는 농구·야구 매니아로 레이커스와 필라델피아 76ers 팬을 자처한다. 현씨가 좋아하는 선수 0순위는 76ers의 가드 앨런 아이버슨. 잘 생긴데다, 잘하기까지 해서가 이유다. 챔피언십 경기는 물론 레이커스나 76ers가 출전하는 경기는 다 챙겨보고, 틈나는 대로 스테이플스도 찾는다.
이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건강해서다. 이길 때 짜릿하고, 질 때 아쉬우며, 경기 내내 긴장과 환호가 교차하는 감정의 역동성이 매력이라는 설명이다. 또 한번 지면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고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는 스포츠 정신의 겸허함도 좋다고 한다.
성격이 외향적이고 말괄량이 스타일이라 여자보다 남자친구가 많다는 제인 현씨는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한다. 스포츠 좋아하는 사람들은 성격도 시원시원해 금방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를 사랑하다 보니 이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다. 트레이시 김씨의 경우 풋볼로 ‘꽂혀서’ 연애를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친구가 소개한 남자가 댈러스 카우보이 팬이었던 것. 대화가 통하자 둘은 빠르게 친해졌고, 스포츠 바에서 자주 만나면서 사귀게 됐다. 지금도 가장 만만한 데이트 장소는 스포츠 바라, ‘풋볼 과부’는 남 얘기라며 의기양양.
김씨는 몇 명이 무리 지어 가보면 꼭 남자 5∼6명 틈에 여자는 나 혼자라며 그래서 더 좋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녀가 풋볼 팬이 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버지가 10년 전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같이 본 것도 91년 로즈보울서 열린 댈러스 카우보이 대 버팔로 빌스의 경기였다. 그래서라도 난 영원한 카우보이 팬이라는 김씨는 결혼해 애를 낳아도 카우보이 팬으로 키울 것이라고 했다.
<김수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