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담당해 취재하다 보면 많은 성직자를 만나게 된다. 천주교 신부, 개신교 목사, 불교의 스님들 등이다.
취재 중 성직자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야기에는 종교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것도 포함된다. 취재를 하며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종교 건 착하고 선하게 살라는 것이 주목적중 하나가 돼 있음을 알게 된다.
종교의 교리가 틀리고 창시자가 틀리지만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한 곳으로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기에 종교의 역할은 사람의 삶에 ‘큰 밝음’을 제시해 준다. 만일 종교가 사람의 생에 밝음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른 종교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일 것이다.
종교의 역사 중 사이비로 말미암아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 예가 있다.고등종교에 포함되는 불교와 천주교 및 개신교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불교는 창시자가 석가모니요 2500여 년전 인도에서 시작됐다. 천주교는 창시자가 예수 그리스도요 역사는 2000여 년이 된다.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창시자로 삼으며 마틴 루터와 존 캘빈 그리고 요한 웨슬리와 같은 개혁자들이 시작해 역사는 약 300년에서 500여 년이 된다.
교리적인 면에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3위일체론’을 갖고 있다. 3위 일체란 육신으로 세상에 온 예수를 하나님 혹은 하느님의 아들로 보며 이에 성령을 추가한다. 하나님 혹은 하느님과 예수와 성령은 3위이지만 일체로 본다. 그러니 개신교와 천주교의 창시자는 예수지만 하느님 혹은 하나님과 성령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불교의 역사가 2500여 년이라 하지만 그 뿌리는 힌두이즘에 두고 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역사는 2000여 년과 500여 년이 되지만 그 뿌리는 유대이즘에 두고 있다.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사용되는 성경 중 하나는 유대인들의 역사인 이스라엘 왕국의 흥망성쇠를 다루며 당시 여호와를 하느님 혹 하나님으로 섬기며 신앙 고백한 것이 구약성경이다.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는 그 뿌리를 찾아 역사에 포함시킨다면 3000년에서 5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이렇듯 장구한 역사를 통해 현재의 고등종교가 된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명암(明暗)이 교차돼 있음도 본다.
그러나 고등종교는 그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고 현재 지구 안에 존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길잡이로 우뚝 서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고등종교는 두 가지 강한 정신적인 면을 갖고 있다. 한 가지는 공의와 정의요 또 한 가지는 사랑과 자비이다. 공의와 정의는 많은 성직자가 인권문제에 앞장서고 있음을 통해 볼 수 있다. 사랑과 자비도 많은 성직자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보며 알 수 있다. 종교의 이 같은 두 가지 역할은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게 하는데 필수적이 된다.
공의와 정의, 사랑과 자비 정신은 비단 성직자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찰들의 조직을 통해 잘못돼 가는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로 나타나기도 한다. 종교의 교리가 개인에게 해당될 때 ‘개인구원’을 위한 역할이 된다. 종교의 정신과 교리가 조직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때 ‘사회구원’의 역할로 나타나게 된다.
착하고 선하게 적선을 하며 사는 사람은 운명과 팔자도 바뀐다는 설이 요즘 많이 유행되고 있다. 이것은 설이 아니라 증명된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옛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증명된다. 악하게 살면 당대에는 벌을 받지 않아도 후대가 벌을 받을 수 있다.
선하게 이웃을 도우며 살면 당대에는 복을 받지 못해도 후대가 복을 받을 수 있음은 종교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밝은 측면이다. 그러기에 고등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든 남을 위해 착하게 살라는 것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서로 도와 가며 살아가라는 뜻일 게다. 이 때 잘 해석해야 할 것은 선함과 적선과 구제가 먼저요, 복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복을 먼저 추구하면 기복신앙에 빠진다. 기복신앙은 고등종교에서 피해야 할 과제다. 선하게 착하게 남을 위해 살다보면 하늘이 복을 내리고 운명도 바뀌는 것이 돼야 한다.
한 평생 길게 살아야 80에서 90년이다. 사는 동안 착하고 선하게 살면서 종교의 ‘구원’ 교리를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점점 더 밝아질 것이다. 천주교의 신부, 개신교의 목사, 불교의 스님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속에 밝은 등불 하나가 더 켜짐을 본다. 그래도 이런 성직자들이 있음에 세상은 더 밝아지고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질 않나.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김명욱 종교전문기자. 목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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