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는 같은 말이지만 언어의 억양(tone)이나 뜻에서의 미묘한 차이를 우리는 뉴앙스(Nuance)라고 한다. 우리 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그렇고, 강아지는 틀림없는 개새끼지만 사람들이 화가 나서 꼭 ‘개새끼야!’ 라고 욕하고 싶을 때 ‘강아지야’라고 하고 나면 어쩐지 사랑스러운 감을 주는 것 같아 직성이 덜 풀릴 수도 있으다.
또 주부가 오늘 반찬은 고기로 한다고 하면 식구들이 먼저 침을 삼키다가도 말을 바꾸어 ‘죽은 동물의 시체 살’이나 구워먹자고 하면 밥맛을 잃을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 모두가 언어의 뉴앙스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의 노대통령은 지난 취임 1년간 많은 말을 했고 또 만들어내기도 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에서 ‘숭미외교’까지가 그것들이며 또 그는 전임의 어느 대통령 보다도 언어의 뉴앙스를 잘 이해하고 또 그것을 십분 이용할 줄 아는 대통령이다.
‘주체사상 외교’라고 해서 조금이나마 아직도 남아있는 보수층의 비위를 거슬리기 보다는 ‘자주외교’라는 한결 부드러운 이름을 붙인 것이나, 오랜 역사 속의 사대주의 때문에 사대주의라면 국민 전체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친미외교’를 ‘숭미외교’로 바꾸어 부른 것은 언어의 뉴앙스를 잘 이용하는 본보기인것이다.
이렇게 국어과목에 탁월한 실력이 있는 그를 가리켜 ‘대학을 나오지 않은 대통령’ ‘아는 것이 없는 우물 안 개구리’로 평가 절하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 과목별로 채점해 보면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수학 과목의 기초인 수치 개념 파악이 남다르다.
기업인 한 사람 밑에는 수천 내지 수만명의 노동자가 있다는 걸 잘 알고, 비평을 하는 소수의 지식층 엘리트 보다는 하루살이에 급급한 민초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확실히 알므로써 국가의 현재와 장래를 생각하기 전에 지지층을 넓히고 사회혁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지 그는 확실히 알고 있다.
특히 ‘나는 지난 선거 때 기업인들로부터 돈은 받았지만 상대 후보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되는 액수다(고로 내가 상대방 보다 10배나 더 정직하다)’ 즉 ‘받은 돈의 액수와 정직성은 역함수관계’라는 ‘노무현 방정식’을 국민 앞에 내놓은 것만으로도 수학 실력은 인정해야 마땅하지만 담당 검찰은 끝내 ‘당시의 노후보 캠프에서 90%는 돌려보내고 10%만 거절하다가 지쳐서 어쩔 수 없이 받은건지?
아니면 투자에 앞서 이익금 산출을 꼭 해보는 생리를 가진 기업인들에게는 노후보의 당선 확률이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캠프의 문은 활짝 열어 놓았지만 수입이 비례적으로 적게 들어온건지’를 조사하지 않아 노무현 방정식의 성립 여부는 미궁으로 빠진 셈이 되었다.
이런 발언을 미국에서 했더라면 토크쇼 사회자들의 단골메뉴로 올라가 난도질 당했을 것이 뻔하지만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는 걸 보면 노대통령은 한국민의 체질에 맞는 민방(民方)을 잘 하는 명의와도 같은 정치인인 것이다.
사회과목 면에서는 이미 전임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상당부분 닦아놓은 기반 위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의식 조차도 하지 못한 사이에 물밑에서 바쁘게 움직인 결과 노동계는 오래 전에, 근래에는 교육계까지 주체사상이 가미된 반미교육을 시작했다.
최근엔 친미의 마지막 보루인 외교부까지 수술에 들어갔음은 곧 사회개혁의 마지막 완성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공포하는 것이다. 사석에서 대통령을 폄하했다가 좌천당하는 경찰과 공사석에서 친미성 발언을 했다가 퇴직당하는 외교부장관과 직원들을 보는 시각은 각자가 다르겠다. 그것은 혁명과업 수행에 신경조직과도 같은 정보세포 조직이 완성되었다는 신호탄
이다. 동시에 ‘안 듣는 데서는 임금 욕도 한다’는 시대는 가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경고탄인 것이다.
옛 글귀처럼 석양에 홀로 서서 저 까마득한 태평양 너머에 시시각각으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조국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나그네의 가슴은 진정으로 암연(暗煙)이 수수로운 것이다.
장태정(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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