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작가 주 평
이 나이에 살면 얼마나 더 오래 살 거라고, 남들은 연말 쇼핑이니, 연말모임 이니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가다 하여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집사람과 나는 집을 고치느라 지난 연말 질금질금 겨울비까지 내리는 날씨에 보름 동안이나 법석을 떨었다. 그 뿐인가 사흘씩이나 부엌바닥에서 새우잠까지 자는 고초까지 치루고서 겨우 수리가 끝났다. 그러나 마누라와 나에게는 그라지와 뒷마당에다 내다 놓은 가구나 박스 속에 담아 옮겨놓은 짐과 책을 도로 끄집어들여, 이삿짐을 제자리에 집어 넣듯 한 고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누라는 옷가지를 농짝 속에 도로 집어넣는 일과 오랫동안 손 때 묻은 물건이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아직 쓸만한 것은 구제품 센터에 보내기 위해 다른 박스에 챙겨넣는 일이었다. 내가 할 일은 책장에다 책을 꽂아 넣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책갈피 속에서 편지 봉투 하나가 뚝 떨어졌다. 발신을 보니 경주에 사는 동화작가 박숙희 씨였다.
내가 왜 그녀의 편지를 책갈피 속에 넣어두고 있었을까? 나는 편지를 들고 서재로 갔다. 그리고는 내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게 마치 꿈 많은 소녀가 책갈피 속에 끼워두었던 은행잎을 다시 꺼내 보듯 아니면 연애편지라도 읽어보듯 편지를 꺼내 보니 봉투 속에는 1992년 8월, 9월, 10월 세 번에 걸쳐 보내온 세 통의 편지가 그 한 봉투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편지마다 내가 내 글씨로 첫번째 편지, 두번째 편지, 세번째 편지라고 메모까지 해놓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보내온 편지를 왜 내가 메모까지 적어 간직하고 있었을까?
첫번째 편지 내용 중 특히 그녀가 나에게 당부한 점은 문명의 이기의 노예같이 길들여져 정서심을 잃어가고 있는 청소년을 위해서라도 나를 고국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고, 두번째 편지는 꿈을 포기한 사람만큼 매력 없고 불쌍한 사람이 없는데, 내가 보내준 나의 수필집 막은 오르고 막은 내리고를 읽고 나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분으로 느껴졌다고 적어보냈다. 그리고 세 번째 편지에는 주평아동극선집을 서점에서 사서 읽고 자기도 아동극을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세 통의 편지 내용이 나를 칭찬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적음은 내가 그렇게 하고자 애써 온 사실 바로 그 점이었다. 특히 그녀가 보내준 동화집 진주가 된 가리비를 읽고 나는 그녀의 주제 선정의 특이함과 문장력의 뛰어남 그 중에도 작품 속의 대화 구사의 재치를 보아, 그에게 아동극작가가 되어보지 않겠느냐? 라고 권유한 나의 편지에 대한 답변이 세 번째 편지에 그렇게 반응했던 것이다.
내가 박숙희 작가와 처음 만난 날은 1992년 8월 8일이었다. 그날 나는 내 친구 석용원 군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아동문학가협회의 여름 세미나에 귀국인사를 겸한 특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 가려고 세미나 장 밖 택시 주차장에 서 있는 나를 그 모임의 회원이었던 그녀가 그녀 차로 나를 숙소까지 데리고 가는 차 속에서 우리는 선후배 작가의 위치가 아닌 마치 오래 사귄 친구같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 나는 그녀의 세 통의 편지를 받고 나의 칼럼 수필산책 란에 ‘경주에서 온 편지’ 라는 제목의 수필까지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세 통의 편지가 오간 것을 끝으로 우리의 왕래가 끝이 났는지 그 이유를 지금껏 모르고 있다. 특히 아동극 작가가 없다 싶이한 한국적인 현실에서 그녀의 작가적인 역량으로 보아 촉망 받는 아동극작가가 될 수 있었는데, 그렇게도 후진작가가 배출되기를 바라던 내가 왜 그녀 같은 월척을 허수로이 놓쳐 버렸는지? 뿐만 아니라 그녀는 네 편의 동극작품을 써 놓고 나에게 보이려고 나의 경주방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어 보냈는데 말이다.
나는 그녀의 동화책 뒤 편에 주소와 함께 적혀있는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혹시나 하고 걸어본 모처럼의 전화는 역시 통하지 않았다. 12년 만에 건 전화! 경주가 아무리 지방도시이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자리 국번호를 사용할 턱이 없다. 그러나 그 해 가을 세 번의 편지 왕래로 우리의 사귐이 어처구니 없이 끝났음이 아쉬워서 편지라도 띄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해를 넘긴 연초에 경주로 편지를 띄워 보냈다. 이 편지 역시 그녀의 손에 들어갈 거라는 기대는 갖고 있지 않다. 그녀가 여지껏 12년 전의 그 집에 살고 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혹시나 경주에서 무슨 답장이 오나 하고 오늘도 우체통을 들여다 보곤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