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호 목사 <나눔선교회>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나보다. 성경공부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싸고, 있는 것들을 죄다 꺼내고, 들쑤셔서 몇 보따리를 만들어 선교회 마당 한쪽 구석에 세워놓은 희정이가 선교회 게이트 밖에서 서있기 시작한 시간이다.
벌써 3시간이 지났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희정이가 너무나 안쓰러워서, 수시로 희정아, 너 밥은 먹어야지, 엄마 못 오셔, 아니 안 와 하며 달래도 보았고, 너 자꾸 그러면, 폴리스 불러서 교도소(Jail) 가게 할거야라며 협박도 해보았다. 너 좀 맞을래? 왜 그렇게 말을 듣지 않니?라고 윽박질러도 보았지만, 희정이는 막무가내였다.
밤 10시가 넘었다. 희정이 엄마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가 없었다. 희정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도, 희정이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희정이의 엄마.
희정이가 아주 어렸을 때 희정이의 엄마는 도박과 술 중독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빠와 자주 싸웠다. 가끔 아빠가 엄마를 막 때리기도 했고 없는 살림을 집어던지고 부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희정이는 엄마가 있어서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입을 것도 없었고 먹을 것조차도 없어서 무척이나 배가 고픈 희정이에게 돈을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을 다 사주겠다는 엄마, 열 밤 자고 희정이를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옷자락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는 어린 희정이의 손가락을 몇 번이나 걸고 약속했던 엄마가, 벌써 희정이 나이 15세가 넘었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희정이는 엄마가 떠난 다음날부터 손꼽아서 엄마를 기다렸다. 열 밤이 지났지만, 오지 않는 엄마를 1년을, 3년을 10년이 다되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희정이는 참 많이 아프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다. 매일매일 희정이는 짐을 싼다. 엄마가 자기를 데리러 온다고, 지금 엄마가 오고있다고. 행여 엄마가 왔는데 자기가 보이질 않으면 그냥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며 선교회 게이트 앞에서 서성이며 엄마를 기다린다. 희정이는 막 웃다가도 이내 슬픈 얼굴을 하고 화를 내다가도 ‘우하하’ 얼굴은 웃질 않고 소리만 웃는다.
얼마 전 희정이의 친할머니가 참다, 참다가 못하여 한국에 있는 희정이 외할머니에게 전화연락을 하셨다. 그러나 희정이 엄마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다시 재가하여 아들딸 낳고 잘산다며 더 이상 찾지 말아달라는 냉담한 말씀만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희정이가 그 후부터 더 많이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목사님, 우리 엄마가 맛있는 거 사서 6시까지 온데요. 지금 선교회 앞에 거의 다 왔다고 나와 있으래요. 나, 집에 간다요. 이제 엄마 오면 나 집에 간다요 하며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희정이.
어느새 내 눈엔 눈물이 흥건히 고이고 있었다. 희정아, 엄마는 안 온다. 엄마는 저기 먼 데 있어. 오고 싶어도 못 와. 이 다음에 희정이가 공부도 잘하고 목사님 말 잘 듣고있으면 그때 오신데. 아직까지도 어린아이의 연령을 뛰어넘지 못하는 희정이에겐 어려운 말은 통하질 않는다. 그저 그때그때 아이들 토닥거리듯이 그냥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희정이가 선교회밖에 엄마를 기다리고 서있을 때마다 내 가슴은 시리고 아프다. 희정이를 가슴에 안고 아무리 나의 사랑으로 감싸려고 해도 엄마의 빈자리를 내가 대신 메울 수는 없었다. 매일 가방을 쌌던 희정이는 할머니를 따라 지금은 멀리 타주에 가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희정이가 선교회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악화되어 방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창 밖만 내다보곤, 어쩌다 동양여자가 지나가면 후닥닥 뛰어나가 엄마∼하고 부른다고 한다.
심하게 약물을 복용했던 것도 아닌데 엄마를 향한 그리움에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정신질환자가 된 희정이. ‘오죽했으면, 엄마가…’ 라고 이해도 해보지만, 먹지 못해도 입지 못해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부모의 사랑이 아닐까!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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