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았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였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치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에게 둘째는 아내는 든든하기 이를 데 없는 성(城)과도 같았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궂은 일만을 도맡아 했지만 그녀는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했다. 어느 때 그가 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했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둘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둘째도 역시 거절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셋째는 말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그러나 같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넷째는 말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먼 나라로 떠났다.
이것은 불교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먼 나라’는 저승을 말하고, 첫째부인은 육체, 둘째 부인은 재물, 셋째 부인은 일가 친척, 친구들, 넷째 부인은 마음을 각각 비유한다. 우리는 육체를 나라고 생각하며 많은 애착을 가지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 가장 중요하며, 몸에 병 없기를 바라고 오래도록 건장하게 장수하기를 바란다.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많은 정성과 시간, 돈을 들인다. 또 몸을 아름답고 멋있게 보이려고 치장하고 가꾸는 데도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나 아무리 공을 들이더라도 저승길을 떠날 때 그 몸둥아리는 가져 갈 수 없다.
재물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 이상으로 재물을 모으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고생도 마다 않는다. 심지어는 재물을 모으느라 한평생 애만 쓰다 건강도 해치고 늙어 병이 들어서는 모은 재산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큰 재물을 모아도 땡전한푼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 저승길이다. 그야말로 저승길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길인 것이다.
일가 친척과 친지, 친구들이 비록 외로움을 달래주고, 기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하고 위로해 주지만, 내가 저승길을 떠날 때는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다. 그저 장례식장까지 따라와 줄 수 있을 뿐이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가더라도 마음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따라 간다고 한다. 그래서 저 세상에 가서 우리의 영혼이 암흑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동안 마음을 제대로 알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죽어서도 함께 따라간다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이 생에서 스스로 밝게 깨닫지 못하면, 한 평생 헛 산 것이 되고 만다. 설사 구원이나 구제에 대한 어떤 종교적 신앙이나 믿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죽음이 무엇이며 마음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수도 있다.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에서는 나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살지 말라. 스스로를 속여 이익될 것이 없다(生死事大 不得空過 自 無益).고 하고, 만일 지혜로써 이 마음을 분명히 알면 비로소 법성(法性)이라 부르며, 해탈이라고도 하고, 생사에 구애받지 않으며, 온갖 법도 구속하지 못하므로 대자재왕 부처라하며, 부사의(不思議)라고도 하며, 성체(聖體)라고도 하며, 장생불사(長生不死)라고도 하며, 혹은 큰 선인(仙人)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마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달마혈맥론에서는 마음을 마음이라고 하는 마음이여! 찾을 길 없도다. 퍼지면 온 누리에 두루하고 조이면 바늘 끝만큼도 용납지 않는도다. 부처를 구하려거든 마음만을 구할지니, 저 마음을 마음이라고 부르는 마음이 부처니라.고 한다.
건강을 챙기고 재물을 모으고, 친지와 신나게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새해에는 마음의 건강, 어떤 재물보다 소중한 마음이라는 진정한 보배, 저승길에도 함께 한다는 나의 참 마음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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