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가 권력을 강화하며 자리를 넘보자 황제는 그를 내쳐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황태자는 이국 땅으로 도망쳤다. 그곳 영주는 그에게 땅을 떼내주었고, 그는 이역만리에서 힘을 길러 황제의 땅으로 진격, 전쟁을 벌였다.
봉건 시대 유럽에서 있을법한 고전적 궁정싸움 스토리가 지금 뉴욕 월가에서 전개되고 있다. 샌디 웨일 시티그룹 회장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가 사내 권력 다툼에서 쫓겨나 시카고의 뱅크원 회장으로 영입된 제임스 다이먼이 그 주인공이다.
15일 뉴욕을 본거지로 하는 미국 2위 은행 JP 모건 체이스는 미국 중부지역을 텃밭으로 하는 5위 은행 뱅크원을 58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미국 언론들은 JP 모건의 뱅크원 인수 사실보다 뱅크원의 다이먼 회장이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진입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월가 사람들은 JP 모건의 뱅크원 인수가 탁월한 경영자 다이먼의 영입을 의미하는 것이고, 600억 달러에 가까운 인수비용은 영입 비용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다이먼은 월가의 금융황제 웨일의 수제자로 성장했다. 83년 트래블러스 그룹을 경영하던 웨일 회장은 하버드 경영대를 갓 졸업한 다이먼을 개인비서로 채용했다. 트래블러스는 여러 금융회사를 먹어치우며 공룡처럼 비대해졌고, 98년에 마침내 시티은행과 합병, 미국 최대은행으로 부상했다.
당시 월가에서는 총괄회장인 웨일을 월가의 금융황제, 계열사인 살로먼스
미스 바니의 회장을 맡았던 다이먼을 황태자로 불렀고, 뉴욕타임스는 다이먼을 경제섹션 커버스토리로 다루기도 했다. 그때 그는 42세였다. 젊은 사람이 부상하면 적도 그만큼 많아지는 법.
웨일 회장도 은근히 그의 성장을 두려워했고, 그의 딸인 제시카 비블로위츠는 자신의 실력으로 시티그룹 후계자가 되겠다며 다이먼과 여러차례 마찰을 빚었다. 다이먼과 제시카의 싸움은 월스트릿저널의 좋은 기사거리를 제공했고, 웨일 회장은 딸과 함께 다이먼을 내쳐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다이먼은 2년간 와신상담하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시카고 작은 은행의 영입 제의를 받았다. 그는 뱅크원을 살리는데, 스승의 기법을 사용했다. 적자 사업의 문을 닫고, 사람을 줄인 결과 뱅크원의 주가는 그가 경영을 맡은 3년 동안에 80%나 급등했다.
시카고에서 다이먼이 재기하는 동안에 웨일 회장은 증권 애널리스트에게 특정 회사의 평가를 좋게 하라는 언질을 주었다는 이유로 감독당국의 조사를 받고, 퇴진 압력을 받았다. 웨일은 지난해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고, 2년후인 2006년에 회장 자리마저 내놓을 예정이다. 이에 비해 다이먼은 뉴욕으로 돌아와 시티그룹의 경쟁사인 JP 모건 사장을 맡았다가, 2006년에 CEO를 맡게 된다.
시티그룹과 JP 모건중 어느 은행이 뉴욕 은행가의 주도권을 장악할 것인가, 다이먼이 웨일을 능가하며 황제 자리에 등극할 것인가. 월가에서 다이먼의 뉴욕 입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재 웨일의 나이는 70, 다이먼은 47세다. 한 세대의 나이차가 있지만,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동지와 적으로 서로 가르치며 경쟁하는 관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 월가는 목하 전쟁 중이다.
지난해말 유태계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가 총대를 메고 월가 수장격인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리처드 그라소 회장이 부당하게 봉급을 많이 받고 있다며 쫓아냈다. 그 자리에 웨일 회장에 의해 퇴진한 또다른 희생양 존 리드 전 시티그룹 회장을 올려놓고, CEO는 골드만 삭스 출신에게 맡겼다.
골드만 삭스의 경쟁회사인 메릴린치에서는 유태계인 데이비드 코만스키 회장이 흑인 노예의 자손인 스탠리 오닐 사장에 의해 밀려났다. 이 와중에 메릴린치 주가는 폭락하고, 골드만 삭스가 월가 투자은행의 주도권을 쥐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뉴욕 월가에는 강한자만이 살고, 약한자는 죽는 정글의 논리가 지배한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이 뉴욕 금융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세계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 월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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