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다 뻔뻔스럽게 주책이 됐어요
2001년 10월 늦둥이로 조셉(2)을 본 김인호(47)·자스민 김(47·라크레센타)씨 부부는 요즘 자칭 ‘즐거운 주책’이다. 두 아들 사무엘(18)과 에녹(15)과 16, 13세 터울로 막내를 낳은 뒤 밤낮 없이 실실거려서다.
늙어간다는 사실이 그리 흐뭇하지 않아 젊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어느 날, 벼락맞은 듯 임신 사실을 접한 김씨는 당초 어떻게 다시 ‘산토끼’를 부르고, ABC부터 시작할까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희락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정창균(58)·태미(50·LA)씨 부부는 나이 50줄에 막내가 여섯 살이다. 두 딸 올리비아(23)와 에바(21)를 20대에 낳고, 샤넨(10)과 유니스(6)를 40대에 낳은 것. 셋째 샤넨이야 노년에 적적할 것 같고, 아들 욕심도 부릴 겸 임신을 계획했지만 덜컥 들어선 넷째는 솔직히 낳지 않으려 했다는 이 부부는 요즘 그때 저거 뗐으면 어쨌을까 아찔할 정도다. 딸 넷 중에서도 제일 애교 많은 막내는 특히 아빠 사랑을 독차지한다. 막내딸 유치원에 입학시킬 때 정창균씨가 손잡고 갔다가 할아버지 되시냐고 오해받은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정씨는 이제 매일 밤 딸아이 뽀뽀 없이는 잠을 못 잔다며 입이 귀에 걸렸다.
늦둥이 본 이유야 다들 가지가지다. 딸 부잣집은 아들, 아들들만 시커먼 집은 딸 바라기도 하고, 노년에 쓸쓸할까봐, 아님 실수로 갖기도 하지만 공통점은 ‘남편들 귀가시간이 일러진다는 것’이다. 딸이든 아들이든,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는 부부들의 ‘회춘 인생’은 이랬다. <김수현 기자>
//////////////////
김인호·자스민 김씨 집 벽난로 앞에는 불자동차, 토잉카, 미키마우스 등 장난감이 수북하다. TV를 켜면 ‘니모를 찾아서’가 반복 재생되고 거실엔 ‘노래하는 대형 주사위’가 굴러다닌다. 재작년, 그러니까 자스민씨 나이 45세이던 해에 낳은 막내 조셉의 물건들이다.
마른나무에 새싹이 돋듯 조셉을 얻고 난 뒤 가장 큰 변화는 집안 분위기. 인생이 심드렁하고 감성도 삭막해질 나이에 이들 부부는 아기 때문에 둘 다 주책이 돼 노상 웃고, 인간의 어릴 적 모습이 새삼스러워 20년은 젊어졌다고 한다.
처음엔 민망해서 집에서만 키우지, 밖에는 못 데려가겠다 싶었다. 다니던 교회도 그만 나가려고 인근 교회로 외도(?)한 시절도 있었지만 은혜로워서 눈물만 펑펑 쏟고 난 뒤 뻔뻔스러워졌다고 한다.
터울로 보면 삼촌뻘인 두 형들, 사무엘과 에녹도 늦게 본 동생 사랑이 유난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조셉만 찾고, 간호사인 자스민씨가 밤 근무를 가거나 부부가 외출을 하면 기저귀 갈고, 목욕시키며 다투어 조셉을 돌본다. 사무엘은 예전엔 에녹과 많이 싸웠지만 요즘은 조셉 때문인지 싸울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자스민씨는 애들이 무뚝뚝해질 나이인데 동생을 너무 예뻐하고 매사에 어른스러워졌다며 훗날 제 아이들 키우는 연습하는 셈이라고 한다.
애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온 가족이 나서니 이들 부부는 별로 바빠진 것도 없다. 오히려 자스민씨는 사무엘과 에녹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걔들을 정신 없이 바쁘게, 의무적으로 키웠다면 늦둥이는 부부가 서로 챙기고, 미루는 법이 없다며 유일한 걱정은 막둥이라 너무 사랑을 받아서 버릇없어질까 싶은 것 뿐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강해졌다. 자스민씨는 한때 인생의 근본을 찾고 싶고, 바람만 불어도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 꽉 찬 느낌이다. 대화의 주제도, 표현도 아기처럼 변해 친구들은 우린 양로원, 너흰 신혼이라고 부러워한다.
늘그막에 주책이라고, 김씨 부부도 늦둥이를 계획한 건 아니었다. 그저 두 아들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말수가 적어지고, 집안에 남자들만 많아 김씨가 문득 외로움 타는 정도였다. 3∼4년전 두 형제가 슬그머니 엄마, 우리도 여동생 하나 있으면 아빠가 좋지 않겠어?라고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별 뚱딴지 소리라고 듣고 넘겼다. 그만큼 임신 소식은 당혹스러웠다. 늙어간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거부하고 싶어 기도로 매달리던 어느 날, 몸이 이상한 게 꼭 갱년기 전 증상 같아 호르몬 검사하러 병원을 찾았다가 ‘섬광처럼’ 임신 예감이 들어 진찰한 결과였다.
6주 진단을 한 의사는 자스민씨에게 낳겠느냐 묻지도 않고 바로 낙태 플랜을 잡더란다. 나이 45세이면 산모도, 태아도 장담할 수 없는 고령이기 때문. 의사들마다 워낙 위험이 높다며 분만을 거절, 김씨는 정 안되면 혼자 낳겠다고 분만 장비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기형아를 낳거나 양수가 터질 경우, 심하게는 죽음마저 각오하면서.
자스민씨가 이처럼 강인해진 건 ‘믿음’ 때문이었다. 우선 김씨 자신이 병력 없는 건강 체질에 몸에 해로운 건 일체 하지 않고 살아와 육체적 무리를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생명을 내 맘대로 지울 수 없다는 신앙의 힘도 버팀목이 돼줬다.
그러나 남편 동의 없이, 자스민씨 혼자 낳을 수는 없는 일. 임신사실을 남편에게 알렸더니 충격 받은 남편은 3일간 아무 말도 안 하더란다. 애가 탄 자스민씨, 남편의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는데 4일째 되던 날, 코 골고 자는 줄 알았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찬송 책을 가져오더란다. 이날 김씨 부부는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다’라는 찬송으로 예배를 보며 아이 키우면서 인간적으로는 짜증나겠지만, 미래에 대해 염려하지 말자고 다짐했단다. 풍요로운 미국에서, 음식과 직장, 보험 있는데 무얼 더 욕심내겠는가?
이렇게 낳기로 결정한 김씨의 출산 스토리는 수퍼 우먼적이다.
믿거나 말거나 투잡, 쓰리잡 뛰면서도 힘이 샘솟고, 발바리처럼 뭐든 모으게 되더라고요. 출산 후 조리 잘 하고, 아기 낳으면 쓰려는 모성 본능인가 봐요. 오히려 임신 전 조금 있던 당마저 없어졌으니 놀라울 뿐이죠
그렇게 해서 45세 나이에 자연분만으로 조셉을 낳고, 7개월간 모유 수유도 했다. 차안에서도 젖이 넘쳐서 다 못 먹일 정도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순조로웠다는 설명이다.
한편 늦둥이 딸을 둘이나 본 정창균·태미씨 부부도 ‘늦게 들어온 복’ 덕분에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특히 낳지 않으려던 막내 유니스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후회될 정도. 밤마다 아빠 침대에 올라와 율동과 노래를 하고, 기도를 받고야 잠들만큼 애교가 많아 아빠 품안은 맡아놨다. 큰 딸 올리비아는 늦게 본 동생들이 너무 신기하고, 돌보는 게 재미있어 집밖으로 나가기 싫을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재즈 뮤지션에서 나이 50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사로 변신한 정창균씨는 셋째는 솔직히 아들을 바라기도 했지만 낳고 보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며 지금은 언니들과 터울이 많아도 샤넨과 유니스가 서로 외롭지 않도록 딸 둘을 낳은 게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
이런 정씨 부부도 당시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태미씨가 태몽을 꿨는데 주위에선 ‘개꿈’이라며 웃어넘겼다.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의사가 혹시 임신일 수 있으니 독한 약은 주지 않겠다고 해 친구와 둘이 어이없어 웃고 말았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창균씨는 딸아이 유치원에 갔다가 교사가 할아버지냐고 묻기에 성이 나서 아빠라고 정정해줬던 에피소드도 있지만 집안에 활기가 넘치고 가족 간 대화가 풍성해 더 바랄 게 없다며 다복함을 과시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