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상대방 탓만 할 때가 있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알면서 그럴 수도 있다. 몰라서 상대방을 탓하면 고의성은 없다. 알면서 상대방만 탓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심각한 수준이란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에 문제가 있단 말이다. 모르면 알게 하면 된다.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남의 탓만 하면 개정의 여지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해결하려 노력하면 해결의 기미를 잡을 수 있다. 자신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시정하려 노력을 하면 된다. 그 노력을 상대방이 알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다시 관계 회복을 갖게 된다. 관계 회복을 통해 사이에 끼었던 문제점들은 해결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풀어나가면 된다. 그러나 사람과 기계 사이의 문제는 사람이 풀어야지 기계는 풀 수 없다. 기계는 수동적이다. 감정도 없다. 그저, 기계는 기계의 역할만 충실히 해 나갈 뿐이다. 기계가 잘못됐다고 기계를 나무랄 수는 없다. 잘못된 기계를 설치한 사람을 나무라야만 한다.
그런데 어느 경우엔 기계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자신이 잘못해놓고 기계와, 기계를 설치한 사람을 나무랄 때가 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던가. 적반하장이란 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본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상대방을 윽박지른다. 방귀 끼고 성낸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 찾아 달랜다 등이다.
얼마 전 밤늦은 귀가 길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주차 미터기에 동전을 넣었다. 그런데, 동전이 들어가기만 하면 다시 되돌아 밑으로 떨어졌다. 미터기가 고장이 났나하고 다른 미터기에 가서 동전을 넣으니 그 미터기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하고 엉터리 미터기를 설치해 놓은 뉴욕시가 원망스럽게 여겨졌다.
이 곳은 자정, 12시가 넘어 동전을 넣으면 오전 8시부터 미터기가 계산한다. 25전 동전 한 개를 넣으면 20분씩 늘어난다. 12시 넘어, 이곳에 주차를 시키고 영수증표를 자동차 앞에 보이게 두면 오전에 다시 차를 옮길 필요가 없어 아침 출근 때 허둥대지 않아도 되곤 했다. 이날도 그렇게 하려 했는데 도무지 동전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결국 이튿날이 되었다. 오전 8시부터 딱지를 떼기 때문에 차를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난 후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동전주머니에 있는 동전들을 우연히 보다가 캐나다 동전 하나를 발견했다. 그 날 미터기가 동전을 받아먹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 그 때, 내 손에 잡혀 미터기에 들락거리든 동전의 주인이 바로 캐나다 동전이었던 것이다.
미터기는 미국 돈만 받아들이게 센서가 돼 있다. 그런데 캐나다 동전을 집어넣고 안되니 엉터리 미터기를 설치했다고 뉴욕시를 욕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잘못해놓고 기계와 기계를 설치한 곳을 나무랐으니 이것이 ‘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후 캐나다 동전은 내 주머니에서 사라졌다.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잘못됨을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못되어 갈 때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 않나하고 먼저 판단해 봄은 관계 회복의 관건이 된다. 자신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바로 시정해야 한다. 시정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시정은 개정의 여지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필요한 방법은 객관적 판단이다. 자신에게 있는 자존심은 객관적 판단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존심’이 앞선 주관적 판단이 앞설 때 판단은 공과 사를 가리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공과 사를 가리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과 이웃에게도 상처와 피해를 줄 수 있다.
캐나다 동전을 넣고 주차 미터기가 작동이 안 된다고 판단했던 잘못됨은 우리 주위에서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캐나다 동전이 내 눈에 안보여 미터기에 넣고 작동여부를 알아내지 않았다고 치자. 지금도 나는 그 미터기가 고장이 났거나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문제가 ‘나’에게 있음을 알아내는 것이 삶을 피곤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도 피곤해지고 억울하게 당하는 쪽도 피곤해진다. 내 눈 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 속에 티만 본다는 성경 구절이 생각남은 우연은 아닌 듯 싶다.
김명욱 <종교전문기자.목회학 박사>
myong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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