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시간의 제약 속에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시간에 밀려 또 다시 2004년이란 새해를 맞게 되었다.
해가 바뀌었을 뿐인데 왜 ‘새해’라 하는가. 무엇이 새롭단 말인가? 작년에 뜨던 태양이 그대로 뜨고, 전에 불던 바람이 그냥 불며, 산천초목 삼라만상이 어제의 것 그대로이며, 이웃 사람들도 구면이고, 지금껏 해오던 일을 그대로 계속해야 하는데 무엇이 새롭기에 <새해>라고 말하는가.
성서에도 보면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니 이 세상에는 새 것이란 없다. 보라, 이것이 새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요, 우리 보다 앞서 있던 것이다”(전 1:9-10)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새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볼 것 같으면 전혀 무의미한 말을 공연히 만들어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때 그 이면에는 필연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흐르는 시간에 의해서 해가 바뀌었을 때 새롭게 전개되는 세월을 맞이하는 인간의 마음 상태가 새로워질 것 같으면 이 세상은 온통 새로워질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해가 바뀌어 새해를 맞이했다고 해도 인간의 마음이 구태의연할 것 같으면 새로울 것이 전혀 없을 것이고,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새로워질 것 같으면 온 세계가 새로워질 것이다.
이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며, 인간의 역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세월이란 것이 물건이라면 사용하지 않고 고이 간직해 둘 것 같으면 점차 누적되어 많은 시간들을 내가 보유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인데 무슨 수로 세월을 아낀단 말인가?
공동번역 성서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는 말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월을 아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한다. 새해를 맞이했다는 것은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다. 기회란 항상 내가 원하는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게 주어진 인생을 내가 살면서도 그 인생의 기회는 내가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주어진 새해는 나의 일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주어진 새해는 나의 일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dml
라는 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기회를 어떻게 하면 후회함이 없도록 잘 살릴 것인지 교훈을 받고자 하는 바이다.
So here hath been dawning blue day. Think, wilt thou let it slip useless away? Out of eternity this new day was born. Into eternity at night will be return. Behold it aforetime no eye ever did. So soon it from all eyes is hid. Here hath been dawning another blue day. Think, wilt thou let it slip useless away?
<여기 새 날이 밝아오도다. 이 새 날을 그대는 무익하게 흘려보낼 것인가 생각해 보라. 이 새 날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밤이면 영원으로 돌아가나니, 남들이 보기 전에 그대가 먼저 이 날을 볼지어다. 이 새 날은 오래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감추어질 것이다. 여기 새 날이 밝아오도다. 이 새 날을 허송세월 할 것인지 그대는 생각해 보라!>
참으로 감명 깊은 시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새해를 나의 인생의 마지막 기회로 생각한다면 결코 무용하게 허송세월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영원으로부터 와서 다시 영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 천재일우의 기회임을 교훈하며,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먼저 보라는 말은 인생살이에 있어 매사에 솔선수범하라는 교훈이다. 설혹 인생길에 예측하지 못했던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안절부절 요동하지 않고 차분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슬기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정월 초하루에는 나름대로 거창한 인생 설계를 했다가도 ‘작심삼일’의 꼴이 되어 일년 내내 동분서주 하다가 섣달 그믐날에 가서 후회막급한 가운데 스스로 가슴을 치는 삶을 평생 반복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인생에서 주어진 세월(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짧다는 사실 앞에 다소곳이 마음의 옷깃을 여미면서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이성철(롱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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