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숙<수필가>
‘하필이면 왜 엠파이어스테이트야, 촌스럽게.’ 반시간이 넘도록 로비를 서성이자니 사람을 이렇게 난감하게 만든 그 인간보다 되려 유명세에 비해 형편없이 좁아터진 로비에 역정이 났다. 그나저나 쌍둥이빌딩이 사라진 탓인지 옛 무성영화처럼 낡은 건물에 관광객은 꾸역꾸역 줄지어 들었다. 처음 노골적으로 미심 적은 눈길을 보내던 수위 아저씨는 30분쯤 지나자 대충 사연을 알겠다는 듯 빙글거린다. 그럴수록 나는 한층 초조해져 애꿎은 손목시계만 거푸 들여다보았다. 6시 35분. 겨우 3분이 더 흘렀을 뿐이다.
송건학, ‘생김새는 전원일기, 영어는 AFKN’
영작문 수업을 함께 수강했던 여학생 중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된 농담은 그대로 그의 별명으로 굳어졌다. 사실 평생 수돗물조차 마셔보지 못했을 것 같은 그의 촌스런 외모와 유창한 영어는 내가 봐도 그 부조화가 심히 두드러졌다.
’흥, 여우같은 계집애들! 함께 영작문 써클을 만들자느니, 회장을 맡아달라느니 하며 그 앞에서 아부를 떨 때는 언제고...’ 그러나 정작 밉살스러운 건 외국물 먹어 영어 잘하는 경영학과 학생으로 굳이 영문과 수업에 들어와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송건학이었다.
처음 그가 귀국해 우리학교에 편입한다는 소식을 접한 건 3학년 여름방학. 그러나 나는 모든 게 낯설 테니 네가 좀 찬찬히 도와줘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걔가 뭐 어린앤가요? 도와주게.라며 매정하게 물리쳤다. 그리고는 두 달 후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쳐 어색한 인사를 나눌 때까지 나는 그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사실 인연만으로 보면 내 쪽에서 그에게 그렇듯 냉담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절친한 고교동창의 아들이요, 같은 유치원을 내리 2년씩이나 함께 다닌 소꿉동무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와 관련된 기억은 언제나 원초적 짜증을 동반하는 것들이었다.
어린 시절 맞벌이 부부의 외동아들인 건학은 늘 심심함에 절어있었다. 상주해 아이를 봐주시는 아줌마랑 풍성한 장난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치원이 파한 후 혼자 집에 돌아가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대개의 경우 슬며시 우리 집에 따라오거나 혹은 굳이 싫다는 나를 졸라 제집에 데려가는 식이었다.
반면 형제들이 넘쳐나는 나로서는 그와 단둘이만 놀아야하는 상황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어느 시점에서 독하게 뿌리치지 않으면 자칫 그 아이 엄마가 퇴근해 올 때까지 긴 하루를 꼼짝없이 그에게 잡혀 있어야 했으니까.
그러다 떠오른 묘안이 바로 숨바꼭질. 술래가 된 그가 눈을 감고 숫자를 세는 사이 나는 잽싸게 골목을 가로질러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번번이 속는 줄을 알면서도 친구가 아쉬운 그로서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 제안을 물리칠 형편이 못 되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후 그가 얼마나 울거나 낙담했는지 당시의 나로서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의 가족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이미 사춘기가 시작된 두 사람은 애써 서로의 눈길을 피했다. 그후 유학을 떠났던 그를 다시 만난 게 3학년 가을, 그 때부터 두 사람의 기이한 숨바꼭질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어리숙한 술래였다.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랴, 짬짬이 싱거운 연애도 하랴 정신없이 바쁜 나와는 달리 그는 한국의 대학문화에 잘 적응을 못 하는 눈치였다. 공연히 싱거운 영문과 수업에 들어온다거나 내가 자주 드나들던 카페에서 죽치고 책이나 읽는 식이었다. 어쩌다 마주앉아 바라본 그의 얼굴엔 어려서의 보송보송한 솜털이 그대로 있었고 그 솜털만 보면 나는 반사적으로 나른해졌다.
6시 40분. 약속시간은 벌써 40분이 지났다.
어이구 저 영감, 느려터졌기는... 빨리 좀 따라와요.
아 내 걱정 말고 임자나 애들 잘 따라가.
북적거리는 관광객들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한국말이 상할 대로 상한 내 자존심을 새삼 들쑤셨다.
‘송건학, 그 동안 너 많이 컸구나. 네 홈그라운드라 이거니?’ 스스로의 전력 탓인지 아무래도 그가 시간을 잘 못 알았거나 그에게 무슨 사고가 생겼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지난 2년, 돌이켜보면 어려서처럼 일방적으로 내 주위를 맴도는 그가 싫어 나는 술래 된 그를 얼마나 잔인하게 따돌렸던가. 집 근처 카페에 와 있다는 그의 전화를 받고도 밥 먹고, 샤워하고 2시간쯤 지나 느긋하게 나타났던 일, 문과대학 앞을 서성이던 그의 앞을 별로 특별한 사이도 아닌 선배의 팔짱을 끼고 시위하듯 지나갔던 일, 그가 보낸 이메일에 번번이 답장을 떼어먹은 일... 그때마다 그는 변변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선영, 네 진로가 빨리 결정됐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네 쪽에서 나를 찾아올 수도 있을까? 졸업 후 그가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내게 남긴 메일조차 6개월이 지나도록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우선은 최근 어학연수를 결정하기까지 스스로의 진로에 갈등했고, 무엇보다 그가 떠난 후 밀려든 허전함을 어떻게든 감출 수 없었으니까.
선영아, 이선영.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지? 그 동안 하나도 안 변했네. 서둘러 로비에 들어선 그가 내 어깨를 잡으며 반가워했다.
우리가 못 본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변하니? 그나저나 사람을 45분씩이나 기다리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
6시가 되려면 아직 15분이나 남았는데... 아하, 선영이 너 오늘 새벽에 서머타임 해제 안 했구나, 그렇지?
... 그런데 나 네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그 옛날 함께 숨바꼭질 하다가 술래인 너 혼자 남겨졌을 때 말이야, 그때 너 울었니?
그럼 울었지, 지금 이선영처럼.
그렁대던 눈물이 더는 참지 못하고 끝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어느덧 창 밖은 살짝 저물고, 곁눈질하던 수위 아저씨의 얼굴엔 달처럼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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