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때 라커펠러센터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나무를 보면서 연민의 정을 가졌던 일이 있다.
이 상념에서 벗어난 것은 그 많은 나무 중에서 이에 선택되었음은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을 바꾼 이후부터이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깨닫게 하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거기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나무를 선정하는 팀은 나무의 크기가 알맞는 것을 찾아서 우선 그 나무의 수명을 진단한다는 것이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나무를 선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다른 곳으로 반출하여서 나무의 굵은 줄기, 가는 줄기와 나무 껍질
까지 나누어서 요긴하게 활용하는 계획이 서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기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어도 대체로 그 나무가 헛되지 않게 활용된다는 계획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나무는 일회용 장식물로 일생을 끝내는 것이 아니고, 다방면
으로 사회에 혜택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찾은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동안에 퇴역한 것 중에는 콩코드기(Concorde G-BOAG)가 있다.
콩코드기는 인류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로 이를 제작한 영국과 프랑스 사람들에게 힘껏 자랑스러움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콩코드기는 ‘76년 상용 서비스에 나섰지만 100여명에 불과한 탑승 인원과 비싼 항공료, 음속을 돌파하면서 내는 소음 등의 문제로 시장성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드디어 불명예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콩코드기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중의 한 대는 시애틀 소재 뮤지엄 오브 프라이트(Museum of Flight, Seattle)에, 다른 한 대는 뉴욕 소재 인트레피드 에어 엔드 스페이스 뮤지엄(Intrepid Air and Space Museum, New York)에 전시되어서 일반이 관람할 수 있게 된다.
또 프랑스 파리에서는 에어프랑스 소속 콩코드기 5대를 해체하여 그 부품을 경매하였다.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 주관으로 열린 이 경매에서는 콩코드기 부품 218점이 선을 보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매 수익금 전액이 불우 어린이를 돕고 있는 에어프랑스 재단에 기탁되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콩코드기는 불우 어린이를 돕기 위해 온 몸의 장기를 바친 격이다.
이밖에도 콩코드기의 생명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즉, 콩코드기의 대를 이을 초음속 여객기가 다시 나올 전망이다. 유럽 최대의 항공우주기업 EADS가 어떤 일본 기업과 손잡고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 개발을 구상하는 중이라고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이것을 보면 콩코드 후속 항공기의 출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콩코드기의 퇴역은 항공우주 기업에 또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시사 주간지나 신문에서는 세모를 맞이하면서 2003년에 타계한 각계의 유공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변화가 있음을 알리고, 그 분들의 공로를 기리며 남아있는 사람들의 할 일을 확인케 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그 분들은 한 분 한 분이 일생동안 뜻있는 일을 하여서 사회에 공헌하였다. 따라서 그 분들의 타계는 사회의 큰 손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누구든지 일생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정해진 시간대를 뛰고 나면, 릴레이용 배턴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야만 한다. 다음 주자들은 이 배턴을 이어 받아서 미완의 일을 계속 추진하게 된다.
어떤 분이 하던 일이 방대할 때는 부분으로 나누어서 할 수도 있고, 일의 규모를 넓히거나 줄일 수도 있고, 방향을 수정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의 일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일을 창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선택이고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영겁의 세월에서 365일을 일년으로 정한 인류는 슬기롭다. 그래서 한 해가 저무는 세모가 있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감상적이 되기 쉬운 요즈음을 창조적으로 전환하는 것도 나 자신의 일이 아니겠는가.
허병렬(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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