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와 패스트푸드는 이젠 지쳤다.
느린 템포의 삶이 그립다. 그리고 오래 걸려도 좋으니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다.
현대인의 속내를 표현한 이 말은 바로 ‘슬로 푸드’(Slow Food)가 지향하는 바다. 거기에는 비록 느리지만 정성과 인간미 그리고 건강이 담겨 있다. 슬로 푸드는 미국의 음식 트렌드를 주도하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일원 북가주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식당 마켓 등 관련 업계에 큰 파장을 드리우고 있다.
일반 수퍼마켓보다 훨씬 비싸지만 로컬 작은 농장에서 비료 쓰지 않고 키운 토마토가 더 인기리에 팔리고 개스불 오븐에서 대량으로 구운 통닭보다 장작불 화덕에서 구운 요리에 손님이 더 모인다. 슬로 푸드의 호소력은 빠르게 미전국에 먹혀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가족 낙농장인 ‘스트라우스 패밀리 낙농장’은 10년 전 유기농 전문으로 전향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문을 닫았을 것이다. 최근 유기농 시장이 확대된 덕분에 영세 낙농장 합병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슬로 푸드 운동 덕분에 도약의 새로운 기회도 맞이하고 있다.
이 농장에서 생산하는 우유는 해프 갤런이 3.49달러다. 일반 수퍼마켓 가격 2.15달러보다 훨씬 비싸지만 연간 2,700만파운드에 달할 만큼 판매는 크게 늘었다. 값은 비싸지만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신선한 식품이기 때문에 인근 마켓과 식당에서 인기가 높다. 천연산 지방 농산물을 사주자는 슬로 푸드 운동 덕을 이 농장은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17년 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 푸드 운동은 맥도널드로 상징되는 규격화 산업화된 식품을 거부하고 지방의 천연산 고유 식품과 맛을 보존하려는 운동. 미국의 경우 최근 뉴욕과 캘리포니아를 발화점으로 전국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슬로 푸드는 패스트푸드가 지향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한마디로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말 그대로 그것은 느리다. 느리게 만들고 먹는 것도 느리게 먹는다. 그것은 신선하다. 가공한 것은 쓰지 않는다. 이웃 농장이나 가게서 나온 것을 쓰며 타이슨 푸드나 월마트와 같은 고릴라 기업이 산업적으로 생산한 식품들은 쓰지 않는다.
또 슬로 푸드 주의는 큰 비즈니스를 지향하지 않는다. 고유의 향기를 보존하기 위해 대기업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슬로 푸드 주위로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싹들이 쑥쑥 자라나고 있다.
슬로 푸드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벌써 큰 기업형 체인점에 넘어 갔을 식당이나 마켓, 농장들이 비즈니스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유기농으로 키우는 ‘나라간셋’ 농장에서 나온 터키는 파운드당 6달러로 메이저 브랜드인 버터볼 표 터키(파운드당 1달러 29센트)보다 훨씬 비싸지만 잘 팔린다. 덕분에 이 농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몬트레이 드라이잭 치즈는 파운드당 7달러50센트로 벨비타 치즈(4달러)보다 비싸지만 양이 달려 못 팔 지경이다. 슬로 푸드주의에 입각한 로컬 농장에서 나온 식품들은 비싸지만 품질이 좋다.
기업형 농업의 공세 앞에 위기에 처했던 치즈, 터키, 쌀, 굴 농장들이 구제되고 있는 셈이다.
느리게 살자는 뜻에서 달팽이를 로고로 쓰는 참여 업체들은 식당, 마켓등 가맹점들을 상호 이용하며 지원한다.
슬로 푸드의 위력은 이 주의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는 두 개 그로서리 체인점 ‘호울 푸즈’와 ‘와일드 오우츠’의 급성장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이 두 마켓은 지난 5년간 일반 수퍼마켓의 매상은 떨어진데 반해 연간 두배 이상이나 늘어왔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슬로 푸드 주의의 영향은 식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여행, 출판업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슬로 푸드 미국 지부는 환경 파괴 없는 식품을 취급하는 뉴욕 내 550개 식당과 바, 마켓을 안내하는 가이드를 발간, 협력 업체를 지원하는 한편 슬로 푸드를 찾는 여행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앞으로는 전국 가이드도 펴낼 계획이다.
슬로 푸드 요리책은 출판업계에서도 뜨거운 화제다. 여러 권이 이미 나와 있으며, 유명 요리사인 앨리스 워터스는 슬로 푸드 요리책과 웍샵을 통해 이 운동을 열렬하게 전개시키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슬로 푸드 주의는 메이저 식품사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는 최근 건강식 제품을 메뉴에 추가, 슬로 푸드 정신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슬로 푸드 주의는 유기농 식품이 몰고 온 식품 혁명에 불을 당긴 것으로 평가된다. 오개닉 푸드는 지난 1990년 10억달러에서 지금은 연간 판매고가 110억달러로 급성장해 왔는데, 소매 전문가들은 슬로 푸드도 유기농처럼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성을 다한 음식-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윌리엄 루벨이 유기농으로 키운 칠면조와 야채를 장작불 화덕에서 굽고 있다. 인생은 한번뿐인데, 매번 식사는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고 슬로 푸드주의자인 그는 말한다.
슬로 푸드 운동이란
맛의 표준화와 전지구적 미각의 동질화를 지양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추구하는 국제운동.
대량생산·규격화·산업화·기계화를 통한 맛의 표준화와 전지구적 미각의 동질화를 지양하고, 나라별·지역별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음식·식생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킬 목적으로 1986년부터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식생활운동이다.
특히 맥도널드의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일어난 운동으로, 맥도널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해 전통음식을 위협하자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식생활운동을 전개하기 시작, 몇 년 만에 국제적인 음식 및 와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운동의 지침은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적인 음식·음식재료·포도주 등을 지키며, 품질 좋은 재료의 제공을 통해 소생산자를 보호하고, 어린아이와 소비자들에게 미각이 무엇인가를 교육하는 데 있다.
미국 내에도 40여개 주에 70개의 지부가 있으며 회원 1만2,500여명에 이른다. 뉴욕과 북가주의 조직이 가장 크다. 2001년 현재 세계 45개국에서 7만여 명의 유료 회원이 참가하고 있으며, 심벌은 느림을 상징하는 달팽이. 본부는 이탈리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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