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기는 말똥말똥 안 자고.
이것은 윤석중 선생님이 1945년에 지으신 ‘먼 길’ 이라는 제목의 노래이다. 그러나 어쩌다 아기가 잠깐 졸고 있는 사이에 선생님은 영원한 길을 떠나셨다. 지난 12월9일의 일이다. 아기가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1,200편의 동시·동요가 있었는데, 그 중 800 편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동요로 되어있는 커다란 주머니가 선물로 남아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성장기에 윤 선생님의 노래를 불렀을 줄 안다. 퐁당퐁당·달맞이·낮에 나온 반달·산바람 강바람·옥수수나무·기찻길 옆·새나라의 어린이·어린이날 노래·졸업식 노래·나란히 나란히·고향땅… 이렇게 제목만 보아도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윤 선생님은 마르지 않고 끝없이 솟아나는 노래샘을 가지고 계셨다. 바로 거기서 솟아난 노래들은 선생님의 철학을 담고 있다. 즉 한국 어린이 들이 밝게, 지혜롭게, 씩씩하게, 바르게, 예쁘게 알찬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는 바이타민을 살짝 가미하셨다. 그 분은 어린이들에게 크게 외치셨다. ‘높이 날아라 푸른 하늘을, 달려라 푸른 벌판을’하고. 윤 선생님은 말년에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계셨다. ‘새싹문학’ 해외판 ‘한글나라’ 계간
잡지를 세계 방방 곡곡에 펼치시려고 힘쓰셨다.
‘한글나라’로 어린이들이 서로서로 손잡고 세계적인 하나의 동그라미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 이 잡지들을 미국 전역에 우송한 것은 LA에 사는 그 분의 따님이 맡았었다. ‘한글나라’에서는 매년 널리 어린이들의 글을 모아 시상까지 하였으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90년 초까지도 이 일로 미국에 거의 매년 오셨고, 그 때마다 뉴욕의 아동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만나셨다. 언젠가는 ‘윤석중이라고? 그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어?’ 라는 말을 가끔 듣고 있다면서 웃으셨다. 그 이유는 약관 13세에 ‘신소년’에 동요 ‘봄’이 입선, 독서회 ‘기쁨새’를 만들고, 등사판 잡지 ‘기쁨’과 회람 잡지 ‘굴렁쇠’를 내셨기 때문이
라는 설명을 하셨다. 그렇다면 ‘동요짓기’를 하신지 80년이 되는 것이다. 긴 세월이다.
뉴욕에 오셨을 때 어느 방송사에서 그분과 대담을 하였다. 한 시간 동안 계속되는 방송 중, 많은 노래를 소개·해설하셨는 데 노래말을 전부 암송하셔서 놀라웠다. 하나 하나의 노래말 선정에 유념하셨기 때문에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구슬 같이 맑은 노래말이 태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일이나 철저히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실제 예가 있다. 어느 날 윤 선생님이 학교를 방문하신 일이 있다. 같은 날 학생들, 동료 교사들, 학부모 몇 분을 만나서 이야기 하신 일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결과 필자에게 소파(小波)방정환 상을 주신 것이다. 평소에 소파상을 제정하신 일에 감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상의 행방이 묘연하게 되
었다.
아동문학은 문학계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춘 문예 작품모집 광고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 작가는 어린이의 친구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윤 선생님은 아동문학계의 거목으로 일생을 마치셨다. 그것도 변함없는 어린이들의 친구로 항상 행복하셨다. 다만 유감인 것이 있다면 ‘되었다 통일’이 되기 전에 멀리 떠나신 일이다. 그 노래말은 다음과 같다.
‘되었다, 통일’./ 무엇이? 산맥이/ 그렇다! 우리 나라 산맥은/ 한 줄기다. 한 줄기/ 되었다, 통일./ 무엇이? 강들이/ 그렇다! 우리 나라 강들이/ 바다에서 만난다./ 되었다, 통일./ 무엇이? 꽃들이./ 그렇다! 봄만 되면 꽃들이/ 활짝핀다. 일제히./ 되었다 통일./ 무엇이? 새들이/ 그렇다! 팔도 강산 구경을/ 마음대로 다닌다./ 통일이 통일이/ 우리만 남았다/ 사람만 남았다. <1961년작>
노래가 하나 가득 남았다. 한국 내외에 어린이의 노래가 하나 가득 남았다. 윤 선생님의 사랑이 어린이들 마음에 남았다. 윤 선생님이 먼 나라로 떠나셨어도 우리는 남아있는 노래에서 그 분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허전하다.
허병렬(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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